조선왕조실록 사고, 500년 기록을 지킨 조선의 분산 백업 설계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 도쿄에서 돌아온 중종·성종대왕실록 실물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의 불길이 도쿄를 삼켰습니다. 그 불 속에서 조선의 책 700여 권이 재가 됐습니다. 도쿄제국대학 도서관에 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책에 담긴 기록은 한 줄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선이 500년 전에 해둔 설계 덕분입니다.

네 벌을 만들어 네 곳에 — 조선의 분산 백업

조선은 왕이 죽으면 그 치세의 기록을 실록으로 편찬하고, 같은 책을 네 벌 만들어 서울 춘추관과 충주·성주·전주의 사고(史庫)에 나눠 보관했습니다. 어느 한 곳이 불타거나 약탈당해도 나머지가 남는 구조 — 오늘날 데이터센터가 백업본을 지리적으로 분산하는 것과 같은 원리를 종이책으로 구현한 셈입니다.

이 설계는 곧 실전 시험을 치릅니다. 임진왜란으로 춘추관·충주·성주 세 곳이 모두 불탔지만, 전주사고본 한 벌이 살아남았습니다. 전란 속에서 안의·손홍록 같은 지역 선비들이 사재를 털어 실록을 내장산 깊숙이 옮겨 지켜낸 덕분입니다. 오늘 우리가 조선 전기 200년의 기록을 읽을 수 있는 건 이 한 벌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 다섯 벌로

조선은 여기서 교훈을 얻습니다. 전주사고본을 바탕으로 실록을 다시 네 벌 더 만들어 다섯 벌 체제로 확대하고, 보관처도 읍내가 아니라 강화 마니산(뒤에 정족산), 태백산, 묘향산(뒤에 적상산), 오대산 같은 깊은 산속으로 옮겼습니다. 접근하기 편한 곳 대신 살아남기 좋은 곳을 택한 겁니다.

오대산사고본 성종대왕실록 표지

이 산속 배치 덕에 실록은 병자호란과 숱한 화재를 거치고도 조선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 치 기록 — 왕의 말과 행동, 날씨와 천문, 상소와 논쟁이 날짜별로 남았습니다.

설계가 막지 못한 것

그러나 이 설계에도 막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나라 자체를 잃는 일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경, 오대산사고본 761책이 도쿄제국대학으로 반출됩니다. 그리고 10년 뒤 관동대지진의 화재로 대부분이 불탔습니다. 남은 것은 74책뿐이었습니다. 그중 27책이 1932년 경성제국대학으로 돌아왔고, 도쿄대 서고에 남아 있던 47책은 2006년에야 반환됐습니다. 2018년 1책이 추가로 돌아와, 현재 75책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있습니다.

불탄 책의 내용이 사라지지 않은 건 같은 내용의 다른 사고본들이 국내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록은 설계가 지켰지만, 책 자체의 수난은 설계 밖의 일이었습니다.

마치며 — 기록을 지킨 건 성벽이 아니라 설계였다

조선왕조실록은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1997)입니다. 세계가 이 기록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분량만이 아닙니다. 잃어버릴 것을 전제하고 설계된 보존 체계 — 복제, 분산, 그리고 전란 후의 재설계까지, 기록을 지키는 일을 시스템으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사진: 국가유산청(국립고궁박물관), 공공누리 제1유형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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