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대왕신종 맥놀이, 심장처럼 우는 종소리에 숨은 신라의 계산

성덕대왕신종 전경 — 종각에 걸린 높이 3.66m의 청동 범종

이 종은 한 번 치면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1분 넘게 웁니다. 진폭이 몇 초 주기로 출렁이는 것이 마치 심장박동 같아서, 듣는 사람들은 종이 “운다”고 표현해 왔습니다. 이 울음의 정체가 바로 성덕대왕신종 맥놀이입니다. 놀라운 건 이 소리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2025년 9월 24일, 22년 만에 그 소리가 다시 사람들 앞에서 울렸다는 점입니다.

두 임금과 한 종 — 742년에서 771년까지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은 742년부터 아버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구리 12만 근을 내어 한 장(丈) 높이의 종을 만들려 했습니다. 그러나 종은 완성되지 못했고, 경덕왕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은 여덟 살에 즉위한 아들 혜공왕에게 넘어갔고, 어머니 만월부인이 섭정하던 771년(혜공왕 7) 12월에야 완성됐습니다. 처음 만들기로 한 지 30년 가까이 지난 뒤였습니다.

  • 높이 3.66m, 입지름 2.27m, 두께 11~25cm —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범종
  • 무게 18.9톤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 정밀 측정)
  • 국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종각에 걸려 있음

종 표면에는 1,037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조산대부 김필오가 지은 글로, 경덕왕의 그리움과 태후(만월부인)의 공덕을 기리고, 이 종소리를 통해 “일승(一乘)의 원만한 소리”를 깨달아 중생이 괴로움을 떠나기를 바란다는 발원문입니다. 소리 자체가 이 종의 존재 이유였던 셈입니다. 참고로 명문의 “12만 근”은 시주한 구리의 양이고, 완성된 종의 무게는 18.9톤입니다.

맥놀이 — 일부러 만든 비대칭

물리학에서 맥놀이(beat)는 진동수가 미세하게 다른 두 소리가 겹칠 때 생깁니다. 두 파동이 포개지면 커지고, 어긋나면 작아지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하죠.

성덕대왕신종 몸체의 비천상 — 연꽃 위에 앉아 하늘로 오르는 부조

강원대 김석현 교수가 2018년 국립경주박물관 심포지엄에서 정리한 수치는 이렇습니다.

  • 기본음 168Hz는 실제로는 168.52Hz와 168.63Hz 두 가닥이 한 쌍을 이룹니다. 차이 0.11Hz의 역수, 즉 9.1초마다 소리가 사그라졌다 되살아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우는 아이 울음”으로 들리는 이유입니다.
  • 그 아래 깔리는 여음 64Hz도 64.07Hz와 64.42Hz로 갈라져 있어 약 2.9초 주기로 숨소리처럼 오르내립니다.
  • 1,000Hz 아래에서 확인되는 고유진동수만 50여 개인데, 어느 하나 거슬리지 않고 화음을 이룹니다.

완벽하게 대칭인 종은 하나의 진동수로만 울려 맥놀이가 생기지 않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은 몸체 두께가 자리마다 다르고 표면 문양과 재료 성분의 분포도 고르지 않아, 두 개의 가까운 진동수가 함께 울리고 그 간섭이 심장박동 같은 울림을 만듭니다. 어떤 종이든 맥놀이는 있지만, 이 종처럼 소리가 잘록하게 끊어졌다 이어지는 예는 다른 데서 찾기 어렵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입니다.

신라 장인이 이것을 알고 설계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계산이 단서를 하나 줍니다. 야구 방망이의 스위트 스팟처럼 종에도 치면 종걸이에 충격이 가장 적게 가고 여운이 가장 길어지는 타격 중심이 있는데, 성덕대왕신종의 당좌(종을 치는 자리)는 그 지점에서 오차 0.3%만 벗어나 있었습니다. 사실상 오차가 없는 셈입니다. 지금도 새 종을 만들 때 외관과 두께의 기본 모델은 1,200년 전의 이 종입니다.

음통과 명동 — 소리를 다듬는 장치

종 꼭대기의 용뉴와 음통 — 용 모양 고리 옆에 대나무 마디 모양의 관이 서 있다

종 꼭대기에는 용 모양 고리(용뉴) 옆에 대나무 마디처럼 생긴 관, 음통이 서 있습니다. 세계 여러 범종 가운데 한국 종에서만 발견되는 구조입니다. 길이 770mm, 내부 구멍은 아래쪽 82mm에서 위쪽 148mm로 벌어지는 나팔관 모양으로, 종 안쪽까지 뚫려 있습니다. 김석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음통은 관악기처럼 특정 주파수를 공명시켜 밖으로 내보내고, 300Hz 이상의 높은 소리를 외부로 잘 통과시키는 음향 필터 구실을 합니다. 다만 음통이 소리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연구도 있어, 정확한 역할은 학설이 이어지는 중입니다.

종 아래 땅을 움푹 파낸 명동(울림 구덩이) 역시 한국 종에만 있습니다. 명동은 종 안의 공간과 함께 하나의 닫힌 공간을 만드는데, 그 크기가 종소리의 진동수와 맞으면 소리가 공명해 훨씬 웅장해집니다. 서양 종이 높은 탑에 매달려 안쪽의 쇠추로 울리는 것과 달리, 한국 종은 땅 가까이 낮게 걸고 밖에서 당목으로 칩니다. 소리가 위로 흩어지는 대신 땅으로 내려와 명동에서 울리게 한 설계입니다. 지금은 컴퓨터로 계산할 명동의 크기를, 신라 장인들은 종을 걸고 구덩이를 파 내려가며 소리를 듣고 다듬어 찾아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종이 떠돈 길 — 봉덕사에서 박물관까지

완성된 종은 성덕왕의 원찰 봉덕사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조선 초 북천이 범람해 절이 물에 잠겼고(1424년 세종의 “봉덕사 큰 종을 헐지 말라”는 명령과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의 “수몰” 기록 사이로 추정), 종은 한동안 수풀 속에 버려졌습니다.

  • 1460년 영묘사로 옮겨졌으나 그 절도 화재로 전소
  • 1507년경 경주부윤 예춘년이 경주읍성 남문 밖 종각으로 옮겨 군사 징집과 성문 시각을 알리는 종으로 사용
  • 1915년 경주고적보존회가 옛 경주박물관(현 경주문화원)으로 이전 (우리역사넷은 1916년 5월 12일로 적어 자료 간 1년 차이가 있음)
  • 1975년 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 종각으로 이전

부처의 소리로 만든 종이 400년 넘게 성문 종으로 산 셈입니다.

에밀레 전설은 사실이 아니다

종소리가 아이 울음을 닮았다 하여, 아이를 쇳물에 넣어 종을 완성했다는 에밀레 전설이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는 물론 『세종실록지리지』, 『대동야승』, 경주의 옛 이야기를 모은 『동경잡기』(1669)에도 없습니다. 비슷한 설화는 1929년 잡지 『별건곤』에 실렸는데, 그것은 1467년 보신각종 이야기였습니다.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없습니다. 1970년대에 인 성분이 검출됐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1998년 성분 분석에서는 사람 뼈에서 나올 인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신라는 이미 502년(지증왕 3)에 순장을 폐지한 나라였고, 부처의 소리를 위해 사람을 바친다는 것은 불교의 근간과도 맞지 않습니다. 슬픈 이야기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하나, 그만큼 이 종의 울음이 사람 소리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마치며 — 33년의 침묵, 그리고 22년 만의 귀환

성덕대왕신종은 1992년 제야에 33번 울린 것을 마지막으로 정기 타종을 멈췄습니다. 균열이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1996년, 2001~2003년, 2020~2022년에 상태를 살피는 타음조사 때만 조용히 쳤고, 2003년 개천절 이후 공개 타종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9월 24일 밤, 국립경주박물관 종각에서 22년 만의 공개 타종이 열렸습니다. 타음조사를 겸한 자리로, 길이 187cm의 당목을 두 사람이 낮은 강도로 12번 쳤고, 신청자 3,800여 명 가운데 추첨으로 뽑힌 771명(종이 완성된 해를 상징하는 숫자)이 지켜봤습니다. 박물관은 2025년부터 2029년까지 5개년 정기 타음조사를 진행 중이며, 첫해 조사에서 고유주파수·진동 모드·맥놀이가 지난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2026년 9월 15일에는 두 번째 공개회 ‘모두를 위한 울림’이 열립니다.

걱정은 남아 있습니다. 종은 여전히 야외 종각에 걸려 있고, 경주의 여름 평균습도는 72~83%에 이르며, 2016년에는 경주 지진도 겪었습니다. 몸통보다 종을 매단 용뉴가 취약하다는 지적도 이어집니다. 박물관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종을 실내에서 보존하고 소리까지 지킬 수 있는 새 전시관(신종관, 약 500억 원 예상)을 추진하고, 여건이 갖춰지면 연 1회 이상 공개 타종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종은 소리를 내려고 만들어졌고, 그 소리를 지키려고 30년 넘게 침묵했으며, 이제는 소리로 자신의 건강을 증명합니다. 1,200년 전 신라 장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두께의 차이로 심어 놓은 심장 소리는 아직도 뛰고 있습니다.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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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옛것의 과학」에서 다른 편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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