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마인물형토기 — CT를 찍자 인형이 주전자가 됐다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 말 탄 사람 모양의 신라 토기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말 탄 사람 모양의 신라 토기입니다. 국보이고, 교과서에도 실리고, 박물관 대표 소장품으로 자주 소개됩니다. 그런데 이 유물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잘못 알려져 있었습니다.

인형이 아니라 주전자입니다.

겉으로는 알 수 없었던 것

이 토기는 1924년 경주 금령총에서 배모양 토기와 함께 나왔습니다. 국보로 1962년 12월 20일 지정됐고, 주인상과 하인상 1쌍 2점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높이길이
주인상23.4cm29.4cm
하인상21.3cm26.8cm

참고로 26.8cm를 “높이”로 적은 자료가 돌아다니는데 그건 길이입니다.

제작 시기는 국가유산포털 기준 신라 5세기입니다(일부 자료는 5~6세기로 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CT를 찍었다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 에서 이 유물의 CT 분석 결과가 공개됩니다. 내부가 비어 있었고, 약 240cc를 담을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구조를 다시 보면 명확합니다.

  • 엉덩이 위에 아래로 뚫린 깔때기(수구) 가 솟아 있습니다 — 붓는 곳입니다
  • 앞가슴에 긴 대롱(귀때·주구) 이 뻗어 있습니다 — 나오는 곳입니다
  • 수구로 부으면 속을 지나 주구로 나옵니다

두 점 모두 같은 구조입니다. 겉으로도 깔때기와 대롱이 보였지만, 속이 실제로 연결돼 있는지는 깨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CT가 그걸 대신했습니다.

X선 분석으로는 제작 기법까지 파악됐습니다. 안에 나무 원통을 넣어 성형한 뒤 빼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속을 비우면서 형태를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기마인물형토기 — 엉덩이의 깔때기와 가슴의 대롱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신라 마구의 도감

이 유물이 미술사와 별개로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말갖춤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어서 신라 마구·복식 연구의 1차 자료가 된다는 점입니다.

표현된 것들입니다.

  • 재갈, 고삐, 안장
  • 다래(장니) — 말 옆구리에 늘어뜨려 흙이 튀는 것을 막는 가리개
  • 앞뒤 가리개
  • 등자(발걸이)
  • 말띠드리개, 말방울

이 중 등자·말띠드리개·말방울은 주인상에만 있습니다. 신분에 따라 마구를 달리 갖췄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등자는 특히 눈길을 끄는 요소입니다. 발을 걸 곳이 생기면 기수가 안장에 몸을 고정할 수 있어 기마전술이 달라집니다. 다만 “세계 등자 역사를 바꾼 유물”이라는 식의 서술은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신라에서 등자가 실제로 쓰였음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금령총 — 어린 왕족의 무덤

이 토기가 나온 금령총은 금방울(금령) 한 쌍이 나와 붙은 이름입니다. 이 무덤의 주인이 어렸을 것으로 보는 근거는 크기입니다.

금령총비교
금관 지름15cm천마총 20cm
허리띠74cm
목관150 × 60cm

이 수치들을 종합해 5~6세 안팎의 어린 왕족으로 추정합니다. 다만 나이도 신분도 추정이라는 점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다섯 살 왕자의 주전자”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2018~2020년 금령총을 재발굴했습니다.

명기(明器) — 죽은 이를 위한 물건

이 유물의 정식 명칭은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입니다. 명기는 죽은 이를 위해 무덤에 넣는 껴묻거리입니다. 실제로 쓰던 물건이 아니라 무덤에 넣으려고 만든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배모양 토기와 함께 나온 맥락에서, 국가유산포털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영혼을 뭍길과 물길로 저세상까지 인도한다” 는 해석을 싣고 있습니다. 말은 뭍길, 배는 물길인 셈입니다.

발견 당시 하인상이 주인상 앞에 놓여 있었다는 점도 이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길잡이가 앞서고 주인이 뒤따르는 배치입니다. 다만 이것도 “~로 해석됩니다”까지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2021년, 새 학설이 나왔다 — 주전자가 아니라 등잔?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2021년 『야외고고학』에 “주전자가 아니라 등잔” 이라는 논문이 실렸습니다. 근거는 세 가지입니다.

  • 240cc는 주전자로는 작다 — 술이나 물을 따르는 그릇치고 용량이 부족합니다
  • 모형 실험에서 물이 곧장 샜다 — 실제로 따르는 용도로 쓰기 어려웠습니다
  • 수평으로 뻗은 부리는 등잔의 특징 — 심지를 얹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이 주장이 통설을 뒤집은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학설이고, 학계에서 검토 중인 단계입니다. 다만 “CT로 주전자임이 밝혀졌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진 뒤에 다시 “주전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는 흐름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과학적 분석이 하나의 결론을 확정 짓는 것이 아니라, 다음 질문을 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신라 마구 — 재갈·등자·말방울 등 말갖춤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정리

  • 겉모습은 인형, 속은 주전자 구조입니다. CT와 X선이 그것을 확인했습니다
  • 붓는 곳은 말 엉덩이, 나오는 곳은 말 가슴입니다. 용량은 약 240cc입니다
  • 말갖춤이 세밀해 신라 기마 문화의 도감 역할을 합니다
  • 5~6세 안팎의 어린 왕족 무덤에서 나왔고, 저세상으로 가는 길의 탈것으로 해석됩니다
  • 그리고 2021년, 등잔이라는 새 주장이 나왔습니다. 아직 열려 있는 문제입니다

참고 자료

관련 영상

유튜브 채널 「옛것의 과학」에서 다른 편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은요

저는 이 유물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대목이 2021년의 등잔설이라고 봅니다. CT로 240cc짜리 주전자 구조가 확인됐다는 이야기는 널리 퍼졌지만, 모형 실험에서 물이 곧장 샜다는 후속 연구까지 아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과학 분석이 답을 확정해 주는 도구가 아니라 다음 질문을 여는 도구라는 점을 이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토기를 “인형인 줄 알았더니 주전자였다”는 반전 하나로 소비하기보다, 등자와 말띠드리개가 주인상에만 달려 있는 세부까지 들여다보는 쪽이 훨씬 남는 게 많다고 봅니다. 1500년 전 장인이 나무 원통을 넣었다 빼며 속을 비운 그 손길이, 지금도 학자들에게 새 숙제를 내주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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