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1500년 전 신라의 금귀걸이입니다. 멀리서 보면 굵은 고리에 장식이 달린 화려한 귀걸이입니다.
그런데 확대하면 다른 것이 보입니다. 좁쌀보다 작은 금 알갱이들이 테두리마다 줄지어 붙어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따로 만들어져 제자리에 놓인 것들입니다.
접착제가 아닙니다
작은 알갱이를 금 표면에 붙이는 이 기법을 누금세공(鏤金細工, granulation) 이라고 합니다. 금속 세공의 최고 단계로 꼽힙니다.
먼저 알갱이를 만드는 과정부터가 흥미롭습니다.
금실이나 금판을 잘게 잘라 달구면, 표면장력 때문에 저절로 둥근 알갱이가 됩니다. 액체가 표면적을 최소로 하려는 성질 때문입니다. 물방울이 둥근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사람이 하나하나 둥글게 다듬는 게 아니라, 물리 현상이 대신 해 줍니다.
학계에서 거론되는 제조법은 여러 갈래입니다.
- 금실 절단 가열법 — 금실을 잘게 잘라 가열
- 탄분 층간 가열법 — 숯가루 층 사이에 금 조각을 넣고 가열해 서로 붙지 않게 함
- 급랭법 — 녹인 금을 떨어뜨려 급히 식힘
진짜 어려운 것은 붙이는 단계입니다
알갱이를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그것을 제자리에 고정하는 일입니다.
붙이는 방법 역시 여러 갈래가 거론됩니다.
- 용융온도가 낮은 금속가루를 매개로 쓰기
- 붕사나 염화동을 매개로 쓰기
- 땜질
어느 방법을 쓰든 공통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알갱이가 녹아 뭉개지기 직전의 온도까지만 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 온도가 지나치면 알갱이가 녹아 형체가 사라집니다
- 모자라면 붙지 않고 떨어집니다
그 사이의 폭이 좁습니다. 온도계도 없던 시절에, 불빛의 색과 금의 상태를 보고 그 구간을 잡아냈다는 뜻입니다. 이 기법의 본질은 재료가 아니라 온도 관리입니다.
구조 — 3단으로 이루어진 귀걸이
이 귀걸이는 굵은고리(태환)식입니다. 신라 금귀걸이는 고리가 굵은 태환식과 가는 세환식으로 나뉘는데, 태환식은 속이 빈 금판을 말아 만듭니다.
전체는 3단 구성입니다.
| 단 | 구성 |
|---|---|
| 주환 | 굵은 고리 — 귀에 거는 부분 |
| 중간식 | 구체 1개 + 반구체 1개 |
| 수하식 | 펜촉형 끝장식 |
그리고 중간식에 하트 모양(심엽형) 달개 25개가 달립니다. 구체에 15개, 반구체에 10개입니다. 달개는 얇은 금판이라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며 빛을 반사합니다.
누금은 펜촉형 끝장식의 안팎과 달개 주변에 집중돼 있습니다.
2018년에야 제 이름을 되찾았다
이 유물의 이력에서 가장 특이한 대목입니다.
원래 “황오동 금귀걸이”라는 이름의 보물 제455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유물은 실제로는 노서동 출토품이었습니다(1966년 일본에서 환수된 것입니다). 이름과 실물이 어긋난 채로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 2000년 — 오류가 지적됩니다
- 2018년 — 455호를 “노서동 금귀걸이” 로 바로잡습니다
- 같은 해, 진짜 황오동 52호분 출토품이 보물 제2001호로 새로 지정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 귀걸이는 1949년 광복 직후 경주 황오동 52호분에서 나왔지만, 자기 이름은 다른 무덤의 귀걸이가 달고 있었고, 2018년 10월 30일에야 제 이름과 지정을 함께 받았습니다.
웹에는 아직 옛 정보가 섞여 있습니다. “황오동 금귀걸이 = 보물 455호”라고 적힌 자료를 보면 2018년 이전 정보이거나 정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2001호가 맞습니다.
어디서 왔나 — 메소포타미아에서 신라까지
누금세공은 신라가 처음 만든 기술이 아닙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해 실크로드를 따라 전해진 것으로 봅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사례는 1세기경 낙랑고분(평양 석암리 9호)의 금제띠고리입니다. 그로부터 4~5세기가 지난 신라에서, 이 기법은 태환식 귀걸이라는 신라 고유의 형식과 결합해 자기 것이 됩니다.
기술이 이동하고 정착하고 변형되는 과정이 유물 하나에 남아 있는 셈입니다.
걸어다니는 귀걸이
2025년 국립중앙박물관 분장놀이(코스프레) 행사에서 이 귀걸이를 구현한 팀이 1등을 했습니다. 사람이 귀걸이가 된 셈입니다.
유물 하나가 전시장 유리 너머에 있을 때와, 사람이 그것을 입고 걸어 다닐 때 전달되는 것이 다릅니다. 달개가 흔들리며 빛을 반사하는 이 귀걸이는 특히 그랬을 것입니다. 원래 그렇게 쓰이라고 만든 물건이니까요.
수치를 말하지 않은 이유
이 글에서 알갱이의 크기나 개수, 귀걸이의 길이와 무게를 숫자로 적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 알갱이 지름 “0.5mm” 또는 “0.3mm”, “수백 개” — 웹에 도는 이 수치들은 부부총 귀걸이나 국보 89호 금제띠고리 등 다른 신라 유물의 값입니다. 황오동 유물 자체의 알갱이 크기와 개수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좁쌀보다 작은” 같은 상대 표현만 썼습니다.
- 길이 8.8cm, 무게 53.4g, 주환 지름 3.4cm(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자료에 따라 8.4cm, 3.7cm 표기도 있고, 무게가 한 짝 기준인지 쌍 기준인지 불명확합니다.
“현대 기술로도 재현 불가”라는 말에 대해
이 유물에도 이 표현이 따라붙곤 합니다. 그런데 황오동 유물의 재현 사례 자체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재현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도한 기록 자체를 찾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단정은 정문경(다뉴세문경)에서 이미 반증된 유형의 통설입니다. 정문경도 “현대 기술로도 재현 불가”라는 말이 널리 퍼졌지만, 2007년 실제로 재현에 성공했습니다.
그리스나 에트루리아 누금세공과의 직접 비교도 근거 서술을 찾지 못했습니다.
기술의 어려움은 “아무도 못 한다”가 아니라 “무엇이 어려운지” 로 설명할 때 더 정확하고 더 인상적입니다. 이 귀걸이의 경우 그것은 온도입니다.
정리
- 보물 제2001호, 2018년 10월 30일 지정. 1쌍.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1949년 경주 황오동 52호분 출토. 신라 5~6세기
- 태환식 3단 구성에 심엽형 달개 25개
- 누금세공 — 금 조각을 달구면 표면장력으로 둥근 알갱이가 되고, 그것을 녹기 직전 온도로 붙입니다
- 기법은 메소포타미아 기원, 한반도 최초 사례는 1세기 낙랑
- 2018년 이전 자료의 “보물 455호”는 노서동 출토품입니다
※ 이 글의 사진은 국가유산청이 공개한 보물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사진입니다. 공공누리 제1유형 사진이 한 장뿐이라 본문에 한 장만 실었습니다.
참고 자료
- 국가유산포털, 보물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 국가유산청 보도자료,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등 4건 보물 지정(2018)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누금세공
관련 영상
쇼츠 「좁쌀보다 작은 알갱이를 녹기 직전에 붙였습니다」 — 영상 업로드 후 링크 연결 예정
유튜브 채널 「옛것의 과학」에서 다른 편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은요
저는 이 글에서 가장 눌러 담아야 할 대목이 화려한 달개 25개가 아니라 온도 이야기라고 봅니다. 온도계 없이 불빛 색만으로 알갱이가 녹기 직전의 좁은 구간을 잡아냈다는 것, 그게 이 귀걸이의 진짜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대 기술로도 재현 불가”라는 흔한 수식어보다, 재현 시도 기록조차 확인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은 이 글의 태도가 오히려 유물을 더 돋보이게 한다고 봅니다. 이름 문제도 마찬가지여서, 웹에 아직 남아 있는 “보물 455호” 표기를 그대로 옮겨 적는 글이 많은데, 2018년에 2001호로 새로 지정된 사정을 모르면 다른 무덤의 귀걸이를 소개하게 되는 셈입니다. 유물 글일수록 감탄사보다 이런 확인이 먼저라는 걸, 저는 이 귀걸이를 정리하면서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