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격진천뢰 — 터질 시각을 나무에 감아 정한 폭탄

비격진천뢰 — 뚜껑 구멍이 있는 무쇠 구체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징비록』과 『선조수정실록』에 남은 장면이 이 무기를 가장 잘 설명합니다.

1592년 9월, 경주성. 성 안에 쇳덩이 하나가 떨어집니다. 그런데 터지지 않습니다. 처음 보는 물건 앞에 왜군들이 몰려듭니다. 굴려 보고, 들여다봅니다. 바로 그때 터집니다.

즉사자는 『선조수정실록』과 『연려실기술』이 20여 명, 『징비록』이 30여 명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성을 버리고 물러납니다. 경상좌병사 박진의 경주성 탈환전, 이 무기의 첫 실전입니다.

지연신관 — 안 터지는 것이 설계였다

보통의 포탄은 충돌하는 순간 터집니다. 비격진천뢰는 다릅니다. 떨어지고 나서 시간이 지난 뒤에 터집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다가옵니다.

이 시간차를 만들어 낸 것이 이 무기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 장치는 화약이 아니라 나무였습니다.

구조 — 안에서 밖으로

  • 몸통 — 무쇠 구형
  • 그 안에 빙철(菱鐵) — 파편이 될 쇳조각
  • 가운데에 죽통(竹筒) — 대나무통
  • 죽통 안에 목곡(木谷) — 나선 홈을 판 박달나무
  • 목곡의 홈에 도화선을 감음
  • 화약과 진흙을 채우고
  • 개철(蓋鐵, 뚜껑) 을 덮은 뒤 심지를 밖으로 뺌

박달나무는 단단하고 조밀해 홈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홈을 나선으로 파면, 짧은 원통 안에 긴 도화선을 정연하게 감을 수 있습니다.

감는 횟수가 곧 시간이다 — 사료에 그대로 적혀 있다

이 부분이 이 무기의 진짜 대단한 지점입니다. 추정이 아니라 문헌에 명문화돼 있습니다.

이서의 『화포식언해』와 『융원필비』가 적습니다.

빨리 터뜨리려면 10고비, 느리게 터뜨리려면 15고비를 감는다. 심지는 죽통 위로 2치를 넘지 않게 한다.

도화선의 연소 속도는 일정합니다. 그러니 감긴 길이가 곧 시간입니다. 10바퀴면 짧고, 15바퀴면 깁니다. 연소 속도를 바꾸는 게 아니라 길이를 바꿔 시간을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를 정연하게 관리하는 장치가 나선 홈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사료가 말하는 것은 “10고비 / 15고비” 뿐입니다. 몇 초라는 수치는 어떤 문헌에도 없습니다. 인터넷에 도는 초 단위 숫자들은 근거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아니라 감는 횟수로만 말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비격진천뢰 내부 구조 — 죽통과 목곡이 들어가는 자리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몸통은 일부러 잘 깨지게 만들었다

폭탄이라고 하면 튼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무기는 반대입니다.

김해솔·허일권,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출토 비격진천뢰의 제작기법과 보존처리」(『박물관보존과학』 24, 2020)가 금속 조직을 분석해 밝힌 내용입니다.

부위 제작법 금속 조직 성질
몸통 주조 시멘타이트·펄라이트 단단하지만 잘 깨진다(취성)
개철(뚜껑) 단조 페라이트 위주 질기다(인성)

그리고 기벽은 위아래보다 옆면이 얇습니다.

이 조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합니다. 폭발할 때 질긴 뚜껑은 버티고 얇은 옆면이 먼저 깨집니다. 그러면 파편이 위로 날아가는 대신 옆으로 퍼집니다. 지면에 놓인 폭탄에서 파편이 옆으로 퍼진다는 것은, 사람 높이로 날아간다는 뜻입니다.

“튼튼하게”가 아니라 “정해진 방향으로 부서지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던 무쇠공입니다.

제작 과정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아래 중앙에 쇳물주입구 자국이 있어, 몸통을 뒤집어 놓고 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완구가 뭉툭한 이유

이 폭탄은 완구(碗口) 라는 박격포형 화포로 쏩니다. 포신이 짧고 사발처럼 뭉툭한 형태입니다. 기술이 부족해서 그렇게 생긴 게 아닙니다.

점화 순서를 보면 이유가 나옵니다.

  1. 먼저 진천뢰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
  2. 그다음 완구의 발사약에 불을 붙인다

즉, 폭탄에 불을 붙인 상태로 포에 넣고 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람 손이 포탄의 심지에 닿아야 합니다. 포신이 길면 손이 안 들어갑니다. 뭉툭한 형태는 시한폭탄을 쏘기 위한 필연적 결과입니다.

이 조합이 개전 전에 이미 있었다는 물증도 있습니다. 보물 중완구(국립진주박물관)에 1590년 9월 제작 명문이 있고, “진천뢰를 발사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에 시작됐습니다.

만든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은 한 줄뿐이다

발명자는 군기시 화포장 이장손(李長孫) 으로 전해집니다. 그런데 그 근거는 『선조수정실록』 1592년 9월 1일 경주성 기사 말미에 사관이 붙인 부연 한 줄이 전부입니다.

생몰연대, 가문, 이후 행적이 모두 미상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이 구조를 떠올렸는지 알려주는 자료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장손에 대한 인물 서사를 만들어 붙이는 것은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짓는 일이 됩니다.

이름 하나가 남았다는 것 자체가 조선 기록 문화의 성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무기를 기록하면서 만든 사람의 이름을 굳이 적어 둔 것이니까요.

“세계 최초의 시한폭탄”은 과장입니다

이 표현이 자주 쓰이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 금나라 진천뢰가 12세기부터 있었습니다. 1232년 몽골과의 전쟁에 철제 화약탄이 쓰였습니다. 이름 자체가 거기서 왔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북송 진천뢰가 원형”이라고 적습니다.
  • 유럽도 1421년 보니파초 공성전에 신관 달린 포탄을 썼습니다. 심지에 먼저 불을 붙이고 발사약에 나중에 붙이는 점화 절차까지 같습니다.
  • “서양보다 200년 앞섰다” 는 서술은 사실 오류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기의 고유한 지점은 무엇일까요. 목곡을 감는 횟수로 시간을 조절하는 메커니즘과 그것이 문헌에 규정으로 명문화돼 있다는 점입니다. 시한 장치가 개인의 감이 아니라 표준화된 절차로 존재했다는 뜻입니다.

국립진주박물관의 표현을 빌리면 “명나라도 일본도 갖지 못한 조선 독자의 무기” 입니다. 최초는 아니지만 독자적입니다.

2018년 고창에서 11점이 나왔다 — 그리고 연대 논쟁

2018년 11월,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의 군기고 추정 구덩이에서 11점이 한꺼번에 출토됐습니다(호남문화재연구원). 그전까지 현존 5점이던 것이 16점이 됐습니다.

의미가 큰 것은 뚜껑이 덮인 완형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개철 실물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앞서 본 2020년 금속 조직 분석도 이 출토품을 대상으로 이뤄졌습니다. 2025년 12월 9일에는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됐습니다.

다만 연대에 논쟁이 있습니다.

언론은 대체로 “임진왜란 때의 폭탄”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임영달(「고창 무장읍성에서 출토된 비격진천뢰 도입시점에 관한 고찰」, 『한국중세고고학』 5, 2019)은 문헌 검토를 근거로 19세기, 특히 1872년경 도입을 주장합니다.

  • 무장현은 임진왜란 때 전방 보급기지 성격이라 이런 무기가 배치될 가능성이 낮다
  • 1872년 “무장현에 화포군을 배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이 출토품을 임진왜란 유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조선 후기까지 지방 관아에 보관돼 있던 실물” 정도가 안전한 서술입니다. 논쟁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함께 알리는 편이 정확합니다.

비격진천뢰 — 나란히 전시된 여러 점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근거를 찾지 못한 수치들

  • 빙철(파편) 개수 — 어떤 공신력 있는 출처에도 수치가 없습니다. “30편” 류의 서술은 근거 불명입니다.
  • 화약량 640g — 단일 언론 출처뿐입니다.
  • “CT를 찍었더니 목곡이 그대로 나왔다” — 개철은 실물로 확인됐지만, 목곡과 죽통이 출토품에서 확인됐다는 서술은 어느 논문에도 없습니다. 유기물이라 부식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크기·무게 — 자료마다 다릅니다. 국가유산청은 지름 21cm, 현존 16점 실측 평균은 지름 19.1cm에 무게 17.2kg입니다. 무게 하나로만 “약 17킬로그램”이라고 말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 진주대첩·행주대첩 사용 — 1차 사료 인용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확실한 것은 경주성입니다.

정리

  • 지연신관을 가진 조선의 시한폭탄입니다. 안 터지는 시간이 설계의 일부였습니다
  • 시간을 정한 것은 화약이 아니라 나선 홈을 판 박달나무입니다. 10고비와 15고비
  • 몸통은 주조로 취성 있게, 뚜껑은 단조로 질기게. 옆면이 얇아 파편이 옆으로 퍼집니다
  • 완구가 뭉툭한 것은 심지에 손이 닿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 “세계 최초”는 아닙니다. 금나라와 유럽에 선례가 있습니다. 조선의 고유함은 조절 메커니즘에 있습니다

보물로 1986년 3월 14일 지정, 1점,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입니다.

참고 자료

관련 영상

쇼츠 「화약을 안 건드리고 나무를 감아서 터질 시각을 정했습니다」 — 영상 업로드 후 링크 연결 예정

유튜브 채널 「옛것의 과학」에서 다른 편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은요

저는 이 무기에서 가장 저평가된 대목이 폭발력보다 10고비·15고비라는 규정 그 자체라고 봅니다. 박달나무 목곡에 도화선을 몇 바퀴 감느냐로 터지는 때를 정하고, 그것을 『화포식언해』 같은 문헌에 절차로 못 박아 두었다는 건 시한 조절이 장인 개인의 감이 아니라 표준이었다는 뜻이니까요. 반대로 “세계 최초의 시한폭탄”이나 근거 없는 초 단위 수치에 기대는 순간, 비격진천뢰의 진짜 가치가 오히려 흐려진다고 생각합니다. 고창 출토품의 연대 논쟁처럼 아직 확정되지 않은 부분을 논쟁 그대로 전하는 태도가, 과장된 최초 타이틀보다 이 무기를 훨씬 돋보이게 한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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