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높이 93.5cm의 청동 불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상의 두께를 재보면 단 5mm입니다. 동전 몇 개를 겹친 정도의 두께로, 1400년 가까이 흠집 하나 없이 버텨 왔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의 두 국보
이 불상은 정식으로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 부르며, ‘미륵보살’이라는 이름은 관례적으로 붙여진 것입니다. 옛 국보 78호와 83호로 불리던 두 점이 있는데, 2021년 문화재 지정번호 제도가 폐지되면서 지금은 번호 없이 국보로만 불립니다. 두 점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중 옛 83호는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93.5cm로 금동 반가사유상 가운데 가장 큰 축에 속합니다. 이 정도 크기의 대형 불상을 5mm 두께로 주조하면서도 이렇다 할 주조 결함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 불상의 가장 놀라운 부분입니다.
한 번의 실패도 허락되지 않는 주조법
이렇게 얇고 정교한 청동상을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답은 밀랍주조법(蠟型鑄造法)입니다.
장인은 먼저 밀랍으로 불상의 원형을 조각합니다. 그다음 그 위에 진흙을 발라 외형틀을 만들고 그대로 굳힙니다. 이 틀을 불에 달구면 안에 있던 밀랍만 녹아 흘러나오고, 밀랍이 있던 자리만큼 빈 공간이 남습니다. 바로 그 빈틈에 녹인 청동을 부어 넣습니다.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이 방식의 특징은 단 한 번의 기회만 있다는 점입니다. 밀랍 원형은 진흙 틀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사라지기 때문에, 주조에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 밀랍을 조각해야 합니다. 게다가 5mm라는 얇은 두께로 청동을 고르게 흘려 보내려면 틀 안의 온도와 청동물의 흐름을 정교하게 통제해야 합니다. 두께가 조금이라도 불균일하면 그 부분이 얇아 터지거나, 청동이 미처 채워지지 않는 결함이 생깁니다.
바다를 건넌 닮은꼴, 고류지 목조불상
이 불상과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일본 교토의 고류지(廣隆寺)에는 이 반가사유상과 매우 흡사한 모습의 목조 반가사유상이 있고, 일본에서도 국보로 지정돼 있습니다.
이 고류지상에는 몇 가지 특이점이 있습니다. 재질이 적송(赤松)인데, 이는 일본 불상에는 드문 나무입니다. 통나무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든 제작법도 눈에 띕니다. 여기에 『일본서기』에 실린 623년 신라에서 불상을 보냈다는 기록까지 더해지면서, 이 불상이 신라에서 전래됐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됩니다. 다만 이는 여러 정황을 종합한 유력설일 뿐, 확정된 사실은 아닙니다.
신라인가 백제인가 — 아직 열려 있는 질문
옛 83호의 제작국에 대해서도 학계 논쟁이 있습니다. 신라에서 만들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백제 제작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양식적 특징과 다른 지역 불상과의 비교를 근거로 삼는데,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불상을 소개할 때는 제작국을 단정하지 않고 “신라설이 유력하다”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마치며 — 1400년째 같은 표정
이 불상은 화려한 장식보다 절제된 형태로 완성도를 추구했습니다. 얇게,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청동을 부어내는 기술 자체가 이 불상의 핵심입니다.
지금 두 점의 국보 반가사유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두운 전시실에서 나란히 관람객을 맞고 있습니다. 1400년 전 장인이 단 한 번의 기회로 완성한 그 미소를, 오늘도 같은 표정으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지정 정보
- 국립중앙박물관 — ‘사유의 방’ 전시 안내
- 위키백과,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