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 비색의 과학 — 산소를 굶긴 불이 만든 푸른빛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 비색 유약에 학과 구름을 상감한 고려청자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도자기의 종주국은 중국입니다. 그런데 송나라의 한 문인이 천하제일을 꼽으며 남긴 목록에는, 자기네 것이 아닌 도자기가 하나 올라 있었습니다. 고려의 푸른 그릇, 비색(翡色) 청자였습니다.

천하제일 목록에 오른 남의 나라 그릇

이 기록은 『수중금(袖中錦)』이라는 책에 실려 있습니다. 태평노인이라는 인물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것들을 나열했는데, 촉 지방의 비단, 정요(定窯)의 백자와 나란히 ‘고려비색’이 들어갑니다.

태평노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언제 사람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청자를 만들어 온 나라의 문인이 남의 나라 청자를 최고로 꼽았다는 사실 자체가, 12세기 고려청자가 도달한 수준을 보여줍니다.

푸른색의 정체는 철분이다

비색의 비밀은 특별한 안료가 아닙니다. 유약에 든 철분이 전부입니다. 고려청자 유약에는 철 성분이 대략 1~3%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철분은 보통 누런빛이나 붉은빛을 냅니다. 쇠가 녹슬면 붉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실제로 같은 흙, 같은 유약을 써도 굽는 방식만 바꾸면 청자는 푸른색이 아니라 누런색으로 나옵니다.

부안 유천리 요지 — 발굴로 드러난 고려청자 가마터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불에게 산소를 굶기다

색을 결정하는 것은 흙이 아니라 입니다.

가마에 공기를 충분히 넣고 구우면 산화염(酸化焰)이 됩니다. 이때 철은 산소와 결합한 상태(산화제이철)로 남아 누런빛을 냅니다. 반대로 가마의 공기 구멍을 막아 산소를 부족하게 만들면 환원염(還元焰)이 됩니다. 산소가 모자란 불꽃은 태울 것을 찾아 유약 속에서 산소를 빼앗아 갑니다. 그러면 철은 산소를 잃은 상태(산화제일철)로 바뀌고, 바로 그때 푸른빛이 나타납니다.

고려의 도공들은 1,250~1,300℃의 가마 안에서 이 상태를 만들고 유지했습니다. 온도계도 산소 측정기도 없이, 불꽃의 색과 연기의 흐름만 보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고려청자 유약 안에는 아주 작은 기포와 결정이 흩어져 있는데, 이것들이 들어온 빛을 산란시킵니다. 색이 표면에만 얹힌 것이 아니라 안쪽에서 우러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깊이감은 여기서 나옵니다.

흙으로 그림을 그리다 — 상감기법

고려는 중국에 없던 기술을 하나 더 얹었습니다. 상감(象嵌)입니다.

그릇 표면을 원하는 무늬대로 파낸 다음, 그 홈에 흰 흙(백토)과 붉은 흙(자토)을 채워 넣고 긁어낸 뒤 유약을 입혀 굽습니다. 그러면 백토는 하얗게, 자토는 검게 구워지면서 유약 아래에 무늬가 그대로 남습니다.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흙을 박아 넣은 것입니다.

금속 공예의 상감을 도자기에 옮겨 온 이 기법은 중국 청자에는 없던 고려의 독자적인 방식입니다.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에서 학이 유약 아래를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고려청자 상감 파편 — 유약 아래 백토와 자토로 새긴 무늬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기록되지 않은 채 사라진 제조법

비색을 내는 구체적인 배합과 소성 조건은 문헌으로 남지 않았습니다. 도공들의 손과 눈에 담긴 감각이었고, 그 감각은 글로 옮겨지지 않은 채 끊겼습니다.

오늘날 강진과 부안에서는 재현 연구가 이어지고 있고, 상당한 수준의 청자가 만들어집니다. 다만 12세기 그 비색과 완전히 같은 색을 내는 일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습니다. 흙의 성분, 유약의 배합, 가마 구조, 땔감, 불을 다루는 호흡까지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그중 어느 하나도 정확한 값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며 — 불이 만든 색

고려청자의 푸른빛은 귀한 재료에서 나온 색이 아닙니다. 흔한 철분을, 산소가 모자란 불 속에 넣어 얻어낸 색입니다.

재료가 아니라 조건이 색을 만들었다는 뜻이고, 그 조건을 800년 전 사람들이 기계 없이 손으로 맞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색을 아직 따라가는 중입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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