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금동탑(금동대탑) — 손바닥 크기가 정상인데 155cm인 이유

국보 금동탑 — 5층 금동 탑 전경

사진: 문화재청,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보통 절에서 공양물로 만든 금동탑은 손바닥 크기, 20~30cm 안팎입니다. 50cm를 넘는 것도 드뭅니다. 그런데 리움미술관에는 사람 키만 한 금동탑이 하나 있습니다. 높이 155cm, 국보 「금동탑」입니다.

손바닥 탑들 사이의 거인

금동탑은 1984년 8월 6일 국보(구 지정번호 국보 제213호)로 지정됐습니다. 고려 전기, 10~11세기 무렵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같은 시기 만들어진 다른 금동탑들과 비교하면 이 크기가 얼마나 이례적인지 드러납니다. 대개 금동탑은 손에 올려놓고 예불을 드리거나 사찰 내부에 두는 작은 공양구였습니다. 155cm는 그런 통상적인 쓰임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입니다.

조각이 아니라 건축이다

금동탑을 가까이서 보면 이것이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기둥과 처마, 난간과 계단까지, 실제 목조 건축의 구성 요소를 그대로 축소해 금속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당시 고려의 목탑이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문헌 기록만으로는 온전히 그려내기 어렵습니다. 금동탑은 그 구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입체 사료인 셈입니다. 청동을 부어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금을 입히는 공정을 거쳤을 것으로 봅니다.

사라진 고려 목탑의 유일한 증언

고려시대의 목조 건물은 오늘날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전쟁과 화재를 거치며 대부분 소실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대 목탑 건축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금동탑 같은 금속 유물은 특히 귀한 자료가 됩니다. 나무는 불에 타 사라져도, 그 형태를 본떠 만든 금속 탑은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두 층, 개태사지의 전언

금동탑은 충남 논산의 개태사지, 태조 왕건이 세운 절터에서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정식 발굴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출토 경위는 확인되지 않으며, 1960년대 도굴·유출 정황을 둘러싼 논란도 있습니다.

현재 남은 탑신은 5층이지만, 학계에서는 원래 7층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상륜부 일부도 소실된 것으로 보여, 온전한 모습이었다면 지금보다 더 높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위쪽 층들이 어디에 있는지, 혹은 애초에 남아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마치며

손바닥 크기가 정상인 물건이 사람 키만큼 커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금동탑은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이 탑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크기가 아니라, 불타 사라진 고려의 목조 건축을 지금까지 입체로 전해주는 몇 안 되는 증거라는 데 있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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