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600년이 넘은 이 목조 건물은 어디서 봐도 반듯해 보입니다. 그런데 실측을 해보면, 반듯한 부재가 거의 없습니다. 기둥은 불룩하고, 처마는 휘어 있습니다. 전부 일부러 그렇게 지은 것입니다.
고려 중기 양식의 국보 건축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국보(구 제18호)로 지정된 건물입니다. 부석사 자체는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했고, 무량수전은 1358년 왜구의 침입으로 불탄 것을 1376년에 다시 지었습니다. 다만 건축 양식이 그보다 오래된 특징을 보여, 원래 건물의 뿌리는 13세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무량수전을 소개할 때 흔히 “현존 최고(最古)의 목조건축”이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데, 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통설상 현존 최고 목조건축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입니다. 무량수전은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 중 하나”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눈을 속이는 기둥, 배흘림
사람의 눈은 완전히 곧은 기둥을 보면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 보인다고 착각합니다. 착시입니다.
고려의 목수는 이 착시를 거꾸로 이용했습니다. 기둥 가운데를 미리 살짝 불룩하게 깎아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만든 기둥을 배흘림기둥이라 부릅니다. 실제로는 완전한 직선이 아니지만, 사람의 눈에는 오히려 이 기둥이 곧아 보입니다. 반듯하게 보이기 위해 반듯하지 않게 깎은 셈입니다.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처마도 눈속임이 필요하다
착시 보정은 기둥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일직선으로 뻗은 처마는 양쪽 끝이 아래로 처져 보이는 착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목수는 건물 모서리의 기둥을 가운데 기둥보다 살짝 높게 세웠습니다. 이 기법을 귀솟음이라 부릅니다. 처마선이 처져 보이는 착시를 상쇄하는 방법입니다.
여기에 더해 안쏠림(기둥을 안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여 구조적·시각적 안정감을 주는 기법)과 안허리곡(처마를 가운데보다 양 끝이 살짝 앞으로 나오도록 완만하게 휘어 잡는 기법)까지 함께 적용됐습니다. 여러 겹의 곡선 보정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건물 전체가 시원하고 안정적인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못 없이 짜 맞춘 구조
무량수전은 구조적으로도 눈에 띄는 특징이 있습니다. 쇠못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나무와 나무를 정교하게 짜 맞추는 결구 방식과 주심포 공포 구조를 사용했습니다. 다만 “못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쇠못에 의존하지 않는 짜맞춤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마치며 — 사람의 눈까지 설계하다
무량수전은 반듯해 보이기 위해 휘어진 건물입니다. 배흘림기둥, 귀솟음, 안쏠림, 안허리곡 — 이 모든 곡선은 계산 없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이 어떻게 착각하는지를 미리 알고 그것을 상쇄하도록 설계된 결과입니다.
고려의 목수는 나무만 다룬 것이 아니라, 그 나무를 바라볼 사람의 눈까지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그 계산된 곡선은 600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참고 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국보 지정 정보
- 부석사 홈페이지 — 부석사 연혁과 무량수전 안내
- 위키백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