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키우기 — 봄·여름 파종 시기와 한 달 만의 개화, 두 가지 꽃형이 만드는 열매, 「메밀꽃 필 무렵」과 구황작물의 역사

메밀꽃은 늦여름 산비탈을 하얗게 덮는 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이 꽃에는 두 가지 오해가 따라붙습니다.

하나는 메밀꽃을 산과 들에 절로 피는 들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메밀은 중앙아시아 원산의 재배 작물이고, 우리가 보는 흰 꽃밭은 모두 사람이 씨를 뿌린 밭입니다. 다른 하나는 꽃이 피면 열매는 저절로 맺힌다는 생각입니다. 메밀은 제 꽃가루로는 열매를 잘 맺지 못하는 식물이라, 꽃밭에 벌과 파리가 드나들어야 곡식이 여뭅니다. 둘 다 아래에서 풀겠습니다.

메밀꽃 만개

이미지: AI로 생성한 개화 타임랩스 프레임 (잊혀진 정원)

메밀은 어떤 식물인가

항목 내용
학명 Fagopyrum esculentum Moench (마디풀과 메밀속) — 이명 모밀
원산·분포 중앙아시아 원산. 우리나라 각지의 밭에서 재배
개화 7~10월(도감 기준). 실제로는 파종 시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키 40~70cm
줄기 가지가 갈라지고 속이 비어 있으며, 연한 녹색이지만 흔히 붉은빛이 돕니다
꽃 흰색이거나 붉은빛이 도는 작은 꽃. 화피가 깊게 5갈래(조각 길이 2~3mm), 암술대 3개. 잎겨드랑이와 가지 끝에 총상꽃차례
잎 어긋나기, 긴 잎자루. 끝이 뾰족한 심장형, 길이 3~10cm
열매 예리하게 세모진 달걀 모양의 수과, 길이 5~6mm. 익으면 갈색·암갈색
생활형 한해살이풀(식용 작물). 꽃은 꿀을 뜨는 밀원으로도 쓰입니다

한 줄로 요약하면 씨를 뿌린 해에 싹 트고, 꽃 피고, 열매 맺고 끝나는 한해살이 곡식입니다. 도감은 열매를 따로 교맥(蕎麥)이라 부른다고 적고 있습니다.

꽃마다 암술 길이가 다릅니다

메밀꽃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두 같은 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메밀밭에는 생김새가 다른 두 종류의 꽃이 섞여 있습니다.

  • 장주화(長柱花) — 암술대가 길어 수술보다 2~3mm쯤 위로 솟아 있는 꽃입니다.
  • 단주화(短柱花) — 반대로 수술이 길고 암술이 짧은 꽃입니다.

이렇게 한 종 안에 암술 길이가 다른 꽃이 따로 있는 성질을 이형화주성(異型花柱性, heterostyly)이라 합니다. 국내 연구에서 메밀밭의 장주화와 단주화는 거의 50:50의 비율로 나타났습니다.

이 구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메밀은 자가불화합성 작물이라, 같은 꽃형끼리는 꽃가루가 닿아도 열매가 잘 맺히지 않습니다. 장주화의 꽃가루는 단주화로, 단주화의 꽃가루는 장주화로 건너가야 합니다. 그 일을 맡는 것이 곤충입니다.

2022년 국내 학술지에 실린 망실(그물 온실) 시험 결과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조건 결실률
곤충을 막은 망실 52.2%
망실에 파리를 넣었을 때 96.2%
망실에 뒤영벌을 넣었을 때 97.4%

곤충이 드나들 수 있느냐에 따라 결실률이 거의 두 배로 벌어졌습니다. 메밀꽃이 작은 꽃을 수없이 모아 달고 꿀을 넉넉히 내는 것도, 곤충을 불러야만 대를 이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원에서 실용적으로 알아 둘 점도 여기서 나옵니다. 화분에 한두 포기만 키우면 꽃은 피어도 열매는 잘 맺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씨를 받고 싶다면 여러 포기를 모아 심고, 곤충이 찾아올 수 있는 바깥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심기 — 봄 파종과 여름 파종

메밀은 봄에 심는 메밀과 여름에 심는 메밀로 나뉩니다. 농촌진흥청 농사로는 재배 생태형을 봄에 뿌리는 여름메밀과 여름에 뿌리는 가을메밀로 크게 나눕니다.

  • 봄 파종 — 중남부 평야 기준 4월 상·중순이 적기입니다. 수원에서 4월 중하순에 뿌리면 5월 중하순에 꽃이 피기 시작해 6월 상순에 만개하고, 6월 하순에 여뭅니다. 씨를 뿌리고 한 달 남짓이면 꽃을 보는 셈입니다.
  • 여름 파종 — 수원 기준 7월 중·하순입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늦여름·초가을 메밀꽃밭이 이쪽입니다. 지역에 따라 7월 중순부터 9월 상순까지 폭이 넓습니다.
  • 서리 전에 끝내기 — 가을 재배는 첫서리가 오기 10~12주 전에 뿌리는 것이 기준입니다. 서리를 맞으면 여물기 전에 끝납니다.
  • 개화기 온도 — 꽃 피는 동안의 낮 기온이 17~19℃쯤 되도록 파종기를 맞추라는 것이 농사로의 권고입니다. 한여름 더위 한가운데서 꽃이 피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 깊이 — 2~5cm. 흙이 축축할 때는 얕게 묻습니다.
  • 뿌리는 방법 — 텃밭이라면 줄 간격 30cm쯤으로 줄뿌림하고, 씨가 7~8cm 간격으로 떨어지게 뿌리면 됩니다. 넓은 자리는 흩어뿌림도 합니다.
  • 볕 — 볕이 잘 드는 곳. 쇼츠에서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 흙 — 모래가 섞였거나 배수가 잘되는 흙에 가장 잘 적응합니다. 석회가 많거나 물이 고이는 찰흙에서는 약합니다.

물과 거름 — 적게, 그러나 꽃필 때는 마르지 않게

메밀은 물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되는 작물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물이 고이는 찰흙에서는 잘 적응하지 못하므로, 파종 뒤 배수 골을 잘 내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다만 꽃이 피는 시기만큼은 너무 건조하지 않게 신경 씁니다. 수분(꽃가루받이) 기간에 상대습도가 50~60% 아래로 떨어지지 않아야 수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농업기술센터의 안내입니다. 가뭄이 길게 이어지면 이때만 물을 보태 줍니다.

거름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 척박한 땅이라면 거름을 조금 주면 수량이 늘어납니다.
  • 이미 비옥한 땅에서는 오히려 종실 수량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 특히 질소를 많이 주면 수량이 줄어듭니다.

메밀이 예부터 척박한 산간 밭에서 길러진 것도 이런 성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거름기 적은 땅을 탓하지 않는 곡식입니다.

메밀꽃 개화 3단계

이미지: AI로 생성한 개화 타임랩스 프레임 (잊혀진 정원) — 3단계

여름·가을 관리 — 쓰러짐과 거두기

메밀은 줄기 속이 비어 있어 비바람에 쓰러지는 것이 여름·가을 관리의 가장 큰 걱정입니다.

  • 북주기 — 자라는 동안 포기 밑에 흙을 끌어 올려 주면 쓰러짐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 꽃밭에 곤충이 오게 두기 — 앞서 본 시험처럼 벌과 파리가 드나들어야 열매가 맺힙니다. 망이나 덮개로 꽃밭을 가리지 않습니다.

거두는 때는 꽃이 아니라 열매를 봅니다. 메밀은 꽃이 차례로 피는 만큼 열매도 한꺼번에 익지 않습니다. 그래서 농사로는 종실의 75~80%쯤이 까맣게 익었을 때 거두라고 안내합니다.

꽃만 보려고 심었다면 거두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한해살이라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면 포기가 자연히 마무리됩니다.

메밀 실사 사진

사진: Koba-chan / CC BY 2.5 (Wikimedia Commons)

번식 — 해마다 씨를 뿌립니다

메밀은 한해살이라 번식은 오직 씨앗입니다. 포기나누기나 꺾꽂이는 하지 않습니다.

  • 씨 받기 — 앞의 이형화주성 때문에 여러 포기를 함께 키워야 씨가 제대로 맺힙니다.
  • 보관 — 까맣게 익은 열매를 거둬 그늘에 잘 말린 뒤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둡니다.
  • 다시 뿌리기 — 이듬해 봄이나 여름에 같은 방법으로 뿌립니다.
  • 품종 — 최근에는 봄과 가을 모두 재배할 수 있는 여름메밀 품종(예: 양절메밀)도 보급되어 있습니다.

헷갈리는 식물 구별

식물 학명 구별 포인트
메밀 Fagopyrum esculentum 밭에서 기르는 곡식. 속 빈 붉은 줄기, 끝이 뾰족한 심장형 잎, 흰 꽃.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것은 대부분 이 종입니다
쓴메밀(타타리메밀) Fagopyrum tataricum 같은 메밀속의 다른 재배종. 루틴 함량이 훨씬 높아(국내 연구에서 종자 기준 일반 메밀의 약 65배) 기능성 곡물로 따로 기릅니다
고마리 Persicaria thunbergii 같은 마디풀과의 들풀. 도랑·물가에 무리 지어 자라고, 잎이 창검 모양이며 줄기에 아래로 향한 가시가 있습니다. 꽃은 가지 끝에 10~20개씩 뭉치고 끝이 붉은 것이 많습니다

가장 쉬운 기준은 자리입니다. 밭에 줄지어 서 있으면 메밀, 개울가에 제멋대로 엉켜 있으면 고마리일 가능성이 큽니다. 줄기를 손으로 훑었을 때 까끌한 가시가 걸리면 고마리입니다.

이럴 땐 이렇게

꽃은 많이 피는데 열매가 안 맺힙니다 — 곤충이 오지 않았거나 포기 수가 너무 적은 경우입니다. 메밀은 다른 꽃형의 꽃가루가 필요합니다. 여러 포기를 모아 심고, 곤충이 드나드는 바깥에 두세요.

줄기가 쓰러집니다 — 자라는 동안 북주기를 해 두면 예방할 수 있습니다. 농가에서는 도복방지제를 쓰기도 합니다.

싹이 고르게 안 납니다 — 너무 깊게 묻었거나 흙이 질척했을 수 있습니다. 2~5cm 깊이를 지키고, 축축한 흙에는 얕게 뿌리세요.

꽃은 무성한데 수량이 적습니다 — 비옥한 땅이나 질소 과다를 의심해 보세요. 메밀은 거름을 많이 줄수록 좋아지는 작물이 아닙니다.

가을에 심었는데 여물기 전에 서리를 맞았습니다 — 파종이 늦었습니다. 이듬해에는 첫서리 10~12주 전을 기준으로 앞당기세요.

연중 관리 달력

시기 할 일
4월 상·중순 봄 파종(중남부 평야 기준). 배수 골 내기
5월 중하순~6월 상순 봄 메밀 개화·만개. 곤충이 드나들게 두기
6월 하순 봄 메밀 여묾. 종실 75~80%가 까매지면 수확
7월 중·하순 여름 파종(수원 기준. 지역에 따라 9월 상순까지). 첫서리 10~12주 전
8~9월 가을 메밀 개화. 북주기로 쓰러짐 예방, 가물면 물 보태기
9~10월 가을 메밀 여묾·수확, 씨앗 말려 보관

흉년을 넘긴 곡식 — 구황작물의 역사

메밀이 언제 우리 땅에 들어왔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문헌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은 고려 고종 때의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입니다. 다만 백제 유적에서 불에 탄 메밀이 나온 것으로 미루어,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재배되었으리라 추정합니다.

메밀이 진가를 드러낸 것은 흉년이었습니다. 메밀은 생육기간이 60~80일로 짧고 거친 환경에서도 잘 자라서, 봄에 심은 곡식을 가뭄이나 서리로 잃었을 때 그 자리에 대신 뿌리는 작물이 되었습니다. 이런 농사를 대파(代播)라 합니다.

『태종실록』에는 그 장면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 태종 5년(1405) 5월 — 충청도의 메밀씨 3천 석을 풍해도(황해도)로 배로 실어 나르게 했습니다.
  • 태종 14년(1414) 5월 — 벼가 말라 죽자 논을 갈아엎어 메밀을 심었다고 적었습니다.

늦게 심어도 서리 전에 여무는 곡식. 쇼츠에서 “고마운 곡식”이라 부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소금을 뿌린 듯 — 「메밀꽃 필 무렵」

이 꽃의 이미지를 굳힌 것은 곡식의 역사보다 한 편의 소설입니다.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은 1936년 10월 잡지 『조광』에 발표되었습니다. 무대는 작가의 고향 근처인 강원도 봉평과 대화의 산간 장터입니다. 장돌뱅이 허생원이 봉평장을 파하고 동료들과 대화장으로 넘어가는 달밤의 길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 길에서 그는 젊은 날 인연을 맺고 잊지 못한 여인을 떠올리고, 동행한 청년 동이가 어쩌면 자신의 아들일지 모른다는 사실에 다가갑니다.

그 밤길 옆으로 펼쳐진 것이 메밀밭입니다. 소설은 달빛 아래 하얗게 핀 메밀꽃을 “소금을 뿌린 듯”하다고 그렸습니다(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이 한 구절 덕분에 메밀꽃은 곡식의 꽃에서 그리움의 풍경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이효석 문학의 백미이자 1930년대 단편의 정점으로 평가받고, 봉평에는 지금도 작가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습니다.

메밀 알레르기 — 꼭 알아 두세요

메밀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식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식품 표시 제도에서도 메밀은 알레르기 유발물질 표시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어, 원재료로 들어가면 양과 관계없이 표시해야 합니다.

이 글은 꽃과 재배를 다룹니다. 메밀을 먹는 일에 대해서는 권하지 않으며, 메밀 알레르기가 있거나 의심된다면 메밀이 든 음식을 피하고 필요하면 전문의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꽃말

메밀꽃의 꽃말은 연인, 그리고 사랑의 약속이라고 전해집니다.

꽃말이 정해진 내력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달밤의 메밀밭에서 옛사랑을 되짚는 허생원의 이야기가 먼저 떠오르기에, 이 꽃말이 유난히 잘 어울려 보입니다. 한 번의 인연을 평생 품고 장터를 떠돈 사람의 이야기이니까요.

마무리

메밀꽃은 혼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입니다. 암술이 긴 꽃과 수술이 긴 꽃이 서로의 꽃가루를 기다리고, 그 사이를 벌이 오갑니다.

키우는 법은 단순합니다. 볕 좋은 곳에 뿌리고, 거름과 물은 아끼고, 여러 포기를 함께 두세요. 한 달 남짓이면 마당 한쪽이 소금을 뿌린 듯 하얘집니다.

쇼츠 「소금을 뿌린 듯 피어나는 꽃」 바로 보기 이 글의 이미지는 실제 사진이 아니라 국립수목원 도감의 형태 기술을 바탕으로 생성한 것입니다.

참고 자료

제 생각은요

저는 이 글에서 사람들이 가장 놓치기 쉬운 대목이 망실 시험의 파리라고 봅니다. 벌이 꽃가루를 나른다는 건 누구나 짐작하지만, 흔히 성가신 존재로만 여기는 파리를 넣었을 때도 결실률이 52.2%에서 96.2%로 뛰었다는 결과는 메밀밭을 보는 눈을 바꿔 놓습니다. 거름을 줄수록, 특히 질소를 많이 줄수록 오히려 수량이 준다는 것도 정성을 쏟을수록 좋아진다는 텃밭의 통념과 정반대라서, 저는 메밀이야말로 부지런한 사람보다 내버려 둘 줄 아는 사람에게 맞는 작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화분 한두 개로 꽃을 감상하려는 분보다는, 볕 드는 자투리땅에 여러 포기를 흩어 뿌리고 벌레가 드나들게 둘 수 있는 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소금을 뿌린 듯하다는 그 풍경이 사실은 사람이 손을 덜 댄 만큼 완성되는 풍경이라는 점이, 알아볼수록 이 꽃의 가장 큰 매력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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