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의 진실 — 옥사설은 일제 교과서가 만든 이야기였다

대동여지도 목판 — 나무에 새긴 조선시대 지도 판각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지도를 만들었다는 죄로 옥에 갇혀 죽었고, 목판은 불태워졌다. 많은 사람이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운 김정호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목판은, 지금 박물관에 멀쩡히 남아 있습니다.

병풍처럼 접히는 초대형 지도

대동여지도는 김정호가 1861년(철종 12년)에 간행한 목판본 전국지도입니다. 국보가 아니라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성신여대박물관·서울역사박물관·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한 인쇄본이 각각 보물로 지정돼 있고, 목판 원판 일부도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보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지도의 구조가 독특합니다. 전국을 남북으로 22층(첩)으로 나누어 병풍처럼 접는 분첩절첩식을 채택했습니다. 전부 펼치면 건물 3층 높이에 이르는 초대형 지도가 되지만, 필요한 지역의 첩만 뽑아서 휴대할 수 있는 모듈형 구조이기도 합니다. 도로에는 10리마다 점을 찍어 거리를 가늠할 수 있게 했고, 20여 종의 기호(지도표)로 성·창고·역 같은 정보를 압축해 표시했습니다.

목판에 새긴 이유 — 지도의 표준화

대동여지도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목판으로 새겼다는 점입니다.

대동여지도 첩 표지 — 병풍처럼 접히는 분첩절첩식 지도책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손으로 그린 지도는 한 장뿐입니다. 하지만 목판으로 새기면 같은 지도를 여러 장 찍어낼 수 있습니다. 김정호는 손으로 그린 지도 한 장을 남긴 것이 아니라, 누구나 찍어서 쓸 수 있는 지도를 만든 것입니다. 당시 축척은 대략 1:160,000 정도로 추정되지만, 당시 도량형 체계의 특성상 정확한 환산에는 연구자마다 이견이 있습니다.

교과서가 퍼뜨린 비극

그렇다면 김정호가 옥에 갇혀 죽고 목판이 불태워졌다는 이야기는 어디서 왔을까요.

이 이야기는 사실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되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김정호가 옥에 갇히거나 처벌받았다는 공식 기록이 없고, 목판 실물이 지금도 여러 기관에 현존합니다. 게다가 신헌 같은 고위 관료가 대동여지도 제작을 후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만약 지도 제작이 죄가 되었다면 후원자들이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 옥사 이야기가 널리 퍼진 경로는 일제강점기, 구체적으로는 1934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교과서 『조선어독본』 등을 통해서였습니다. 조선이 스스로 만든 뛰어난 지도조차 지켜내지 못하고 만든 사람을 박해했다는 서사는, 조선의 통치 능력을 깎아내리려는 식민사관과 맞닿아 있습니다.

김정호의 생몰년이나 “전국을 몇 바퀴나 답사했다”는 이야기 역시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전설에 가깝습니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김정호가 기존에 축적된 여러 지도와 지리지를 집대성해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다는 설명이 통설로 받아들여집니다.

마치며 — 조선이 품고 쓴 지도

대동여지도는 조선이 버린 지도가 아니라, 조선이 품고 쓴 지도였습니다. 관료들의 후원 아래 만들어졌고, 목판으로 찍혀 널리 쓰였으며, 그 목판은 지금도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만들어진 비극 하나가 오랫동안 진짜 역사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지도 자체만큼이나 우리가 기억해 둘 만한 이야기입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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