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 경축식. 온 국민이 지켜보는 생중계 속에서 크레인이 거대한 화강암 건물의 꼭대기 첨탑을 잘라냈습니다. 나라가 건물 하나를 공개적으로 지우기 시작한 날입니다. 철거는 이듬해까지 이어졌고, 건물은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 건물이 조선총독부 청사입니다.
위치 자체가 목적이었던 건물
조선총독부 청사는 1926년 완공됐습니다. 문제는 건물의 생김새가 아니라 자리였습니다. 일제는 경복궁의 흥례문 권역을 헐어내고, 정궁의 정면을 가로막는 위치에 이 건물을 세웠습니다.

광화문에서 바라보면 근정전은 보이지 않고 총독부의 화강암 돔만 보였습니다. 조선 왕조의 중심 축선을 식민 통치 기구가 물리적으로 덮어버린 배치 — 건축 그 자체가 통치의 메시지였습니다.
헐 것인가, 남길 것인가 — 50년의 논쟁
광복 후에도 건물은 50년을 더 서 있었습니다. 미군정청으로, 정부청사(중앙청)로, 나중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였습니다. 그 사이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 철거론: 정궁을 가리는 식민 지배의 상징을 그대로 둘 수 없다, 경복궁을 복원해야 한다
- 보존론: 치욕의 역사도 역사다, 남겨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건물의 실용적 가치도 크다
결론은 광복 50주년에 맞춰 내려졌습니다. 1995년 8월 15일 첨탑 절단을 시작으로 해체에 들어갔고, 1996년 11월 지상부 철거가 완료됐습니다. 폭파가 아니라 절단과 압쇄 중심의 해체 방식이었습니다.
잘린 첨탑은 지금 어디에
철거가 곧 망각은 아니었습니다. 잘라낸 첨탑은 천안 독립기념관의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전시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첨탑을 받침대 위에 올려 우러러보게 하는 대신, 지하 5m 깊이에 반쯤 묻히듯 낮게 내려놓고 관람객이 내려다보게 했습니다. 방향도 해가 지는 서쪽입니다. 한때 경복궁을 내려다보던 건물의 정점을, 이제는 누구나 내려다보는 위치에 둔 것 — 전시 자체가 하나의 발언인 셈입니다.
마치며 — 건물이 사라진 뒤에 보이는 것
철거 이후 경복궁 복원이 이어졌고, 광화문 광장에서는 이제 근정전과 북악산이 한 축으로 보입니다. 70년 만에 돌아온 풍경입니다.
철거가 옳았는지, 보존이 옳았는지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엇갈립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논쟁 자체가 “공간과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 사회에 남겼다는 점입니다. 건물은 사라졌지만 질문은 남았습니다.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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