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중박 분장놀이 결선 25팀이 고른 유물 25점, 하나씩 자세히

사람이 유물로 변신하는 대회가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국중박 분장놀이」 입니다.

올해로 세 번째인 이 대회는 2026년 처음 전국편으로 열렸습니다. 275팀 643명이 신청했고, 춘천(9월 5일)·공주(9월 6일)·대구(9월 12일)·전주(9월 13일) 본선에서 50팀이 겨뤄 25팀이 결선에 올랐습니다. 결선은 9월 19일(토) 오후 3시,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립니다. 지난해 대상은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분장이었습니다.

유튜브 영상에서는 25팀이 고른 유물을 한 줄씩 짧게 소개하고 “여러분의 원픽은?”이라고 물었습니다. 이 글은 그 뒤편입니다. 영상에 다 못 넣은 소장처, 크기, 연구 결과, 그리고 아직 결론이 안 난 이야기를 유물마다 정리했습니다. 번호는 영상과 같습니다(대회 카드 순서가 아니라 시대순으로 새로 붙인 번호입니다).

분장 사진은 싣지 않았습니다. 박물관이 배포한 결선 진출작 카드는 공공누리 제4유형(상업적 이용·변경 금지)이고, 참가자에게는 초상권이 있습니다. 실제 분장 모습은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인스타그램의 결선 진출작 공개 (1)과 결선 진출작 공개 (2)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개인 참가자의 이름도 공인인 모델 이혜정 씨를 빼고는 적지 않았습니다.

청동기·초기철기 — 1번부터 3번

1번 간돌검 (이혜정)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돌을 갈아서 만든 칼입니다. 한자로 마제석검(磨製石劍)이라 합니다. 모델 이혜정 씨가 고른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해 무계리 고인돌 출토 간돌검(신수2662)으로 보입니다. 카드에 유물명만 있어 소장품 사진과 대조해 특정했습니다.

  • 검몸과 한 단으로 된 자루(일단병식)가 한 돌로 이어져 있습니다
  • 자루의 시작과 끝이 옆으로 크게 벌어진 과장된 모양이라, 박물관은 실제 무기보다 의례용(의기)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 재료는 점판암이고, 돌의 검은 결을 살려 좌우 대칭 무늬가 나도록 만들었습니다
  • 길이는 같은 소장품 페이지 안에서도 46cm(정보란)와 52cm(설명문)가 엇갈립니다. 약 50cm로 보면 됩니다

간돌검은 대개 30cm 안팎이고, 한반도에서 가장 긴 것은 청도 진라리 고인돌에서 나온 66.7cm짜리입니다. 청동기시대에도 금속은 귀해서 일상 도구는 여전히 석기였고, 이 시대에는 날만이 아니라 석기 전체를 매끄럽게 갈아 마감했습니다.

간돌검 이야기는 간돌검 쇼츠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2번 요령식 동검 (개인 참가자)

중국 악기 비파를 닮아 비파형 동검, 요령(랴오닝) 지방에서 많이 나와 요령식 동검이라고 부릅니다. 카드의 칼은 부여 송국리 돌널무덤에서 나온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신수3094, 길이 33.4cm)과 사진이 일치합니다.

  • 검몸·손잡이·검자루맞추개돌을 따로 만들어 끼우는 조립식입니다. 중국식·오르도스식 동검과 구별되는 특징입니다
  • 이 칼은 슴베 한쪽에 홈이 있어 대륙 출토품과 구별되고, 박물관은 한반도 중남부에서 만든 것으로 봅니다
  • 1974년 4월 송국리 돌널무덤 한 기에서 요령식 동검·간돌검·청동 끌·곱은옥 등 33점이 함께 나왔습니다
  • 요령식 동검이 온전한 무덤 맥락으로 나온 첫 사례였고, “한반도에는 제대로 된 청동기 문화가 없었다”는 일제강점기 고고학의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가 됐습니다

한반도 청동기 600여 점을 분석한 연구(조진선·이은우 2021)에 따르면 요령식 동검 시기에는 구리 약 80%·주석 10%·납 10% 안팎이 많았습니다. 다만 이것은 유형 전체의 경향이지 이 칼의 분석값은 아닙니다. 1974년 조사 주체와 날짜는 자료마다 서술이 달라 “1974년 4월, 주민 신고로”까지만 적습니다.

3번 청동 방울(팔주령) (무연모)

팔각 청동판 모서리마다 방울이 하나씩, 모두 8개 달린 청동기입니다. 방울 안에는 지름 약 0.7cm 청동 구슬이 들어 있고, 방울 뒤 타원형 구멍 두 개로 소리가 빠져나옵니다. 카드 사진은 국보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의 팔주령 2점과 같습니다.

화순 대곡리 팔주령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 1971년 8월, 주민 구재천 씨가 창고 배수로 공사 중 발견했지만 고철로 여겨 엿장수에게 넘겼습니다
  • 넉 달 뒤인 12월 20일 엿장수가 전남도청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이듬해인 1972년 3월 국보가 됐습니다
  • 함께 나온 청동기는 세형동검 3·팔주령 2·쌍두령 2·잔무늬거울 2 등 11점입니다
  • 두 점이 쌍으로 나와, 두 손에 하나씩 들고 흔든 의식 도구로 추정합니다
  • 박물관은 이런 의기류가 동검보다 주석이 많다고 설명합니다(구체 수치는 공개 자료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 크기는 국립중앙박물관 “지름 14.5cm·12.5cm”, 다른 자료 “12.5cm·12.9cm”로 갈립니다. 소장품번호는 국립중앙박물관 체계(신수2580)지만 국가유산청은 관리처를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적고 있어, 실물을 보러 가려면 전시 여부를 먼저 확인하세요. 무덤 목관의 방사성탄소연대(기원전 6~5세기)와 유물 형식으로 본 연대(기원전 3~2세기)가 200년 넘게 어긋나는 문제도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백제 — 4번부터 6번

4번 무령왕릉 진묘수 (웅진지키빅)

무령왕릉 널길 한가운데서 밖을 향해 무덤을 지키던 돌짐승입니다. 1971년 발굴 때 무덤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눈에 띈 유물이었고,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진묘수는 이것 하나뿐입니다. 국보,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무령왕릉 석수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 뭉툭한 입술에 붉은 칠 흔적이 있고, 머리에는 나뭇가지 모양 철제 뿔이 꽂혀 있습니다
  • 몸통 옆과 다리에는 날개로 보이는 불꽃무늬를 새겼습니다
  • 2017년 공주대·국립공주박물관 공동연구(『보존과학회지』 33(4))에서 석수와 왕·왕비 지석이 같은 돌, 각섬석암으로 밝혀졌습니다. 표면의 적갈색 얼룩은 함께 묻힌 철제품이 산화한 흔적입니다
  • 석재 산지가 전북 장수 일대일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가능성 단계라 “장수 돌”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 오른쪽 뒷다리는 발견 당시 이미 부러져 있었습니다. “도망가지 못하게 일부러 부러뜨렸다”는 해석이 돌지만 학술 근거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크기도 자료마다 조금씩 달라(국가유산청 높이 30.8·길이 49cm) 국가유산청 값을 적었습니다.

5번 왕흥사터 사리기 (백제 야호)

청동 사리합 → 은 사리호 → 금 사리병, 세 겹 그릇입니다. 2007년 부여 왕흥사터 목탑 자리 심초석의 사리공에서 물에 잠긴 채 나왔습니다. 2019년 국보.

  • 청동 사리합에 6행 29자 명문이 있습니다: “정유년(577) 2월 15일 백제왕 창(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찰을 세웠다. 본래 사리 2매를 묻을 때 신의 조화로 3매가 되었다”
  • 명문 덕분에 절대연대가 확실한,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기입니다
  • 그런데 열어 보니 사리가 없었습니다. 은 사리호 바닥의 흰 물질을 분석하니 납이 주성분이라 사리일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 비파괴 분석으로 금 사리병은 금 98%, 은 사리호는 은 99% 이상으로 확인됐습니다

⚠️ 『삼국사기』는 왕흥사 창건을 600년으로 적어 명문의 577년과 23년 차이가 납니다. 명문의 “立刹”을 절 창건이 아니라 탑(찰주) 건립으로 읽어 이 차이를 해소하는 견해도 있어, “삼국사기가 틀렸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6번 백제 금동대향로 (방금 피움)

높이 61.8cm, 무게 11.8kg. 용 받침 위에 연꽃 몸체, 산봉우리 뚜껑, 꼭대기에 봉황이 앉은 향로입니다. 국보,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백제 금동대향로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 1993년 12월 12일, 부여 능산리 절터의 주차장 공사를 앞둔 마지막 발굴에서 물 찬 구덩이 진흙 속에서 나왔습니다. 진흙과 물이 산소를 막아 도금까지 온전했습니다
  • 나온 자리가 공방으로 보이는 건물터라, 백제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유력한 근거가 됩니다
  • 뚜껑의 구멍은 12개입니다(봉황 가슴 2 + 윗줄 5 + 아랫줄 5). 2019년 연구(김선영·황현성, 『보존과학회지』 35(5))에서 4개만 원래 크기이고 8개는 다 만든 뒤에 넓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 아랫줄 구멍을 원래 크기로 되돌려 재현품에 향을 피우면 향이 꺼졌습니다. 공기가 아래로 들어와 위로 빠지는 흐름(굴뚝 효과)을 맞추려고 구멍을 조정한 흔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향로가 660년 사비성 함락 때 급히 묻혔다는 이야기는 기록이 없는 추정입니다. 뚜껑의 인물·동물 수도 세는 기준에 따라 “인물 16·동물 39″(국립부여박물관 계열)와 “사람 19·짐승 67″(2024 보도)로 갈리고, 악사는 5명입니다(7명이라는 자료는 틀린 것입니다).

신라·통일신라 — 7번부터 12번

7번 기마인물형 토기 (말탄사람둥이)

말 탄 사람 인형처럼 보이지만, 말 엉덩이 깔때기로 물을 부으면 가슴의 대롱으로 나오는 주전자입니다. 1924년 경주 금령총에서 나온 한 쌍(주인상·하인상)으로 국보입니다. 주인상 높이 23.4cm.

  •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서 CT 결과가 공개됐고, 속 용량은 약 240cc입니다
  • X선 촬영으로 속에 나무 원통을 넣어 모양을 잡은 뒤 빼낸 제작 기법이 드러났습니다
  • 등자·말띠드리개·말방울은 주인상에만 있습니다

⚠️ 2021년 『야외고고학』에는 “240cc는 주전자로는 작고, 모형 실험에서 물이 곧장 새며, 수평 부리는 등잔의 특징”이라는 등잔설이 실렸습니다. 통설을 뒤집은 건 아니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신설입니다. 무덤 주인이 5~6세 어린 왕족이라는 것도 금관 크기에서 나온 추정입니다. 지난해 이 대회 수상작 가운데 하나가 이 토기 분장이었습니다.

8번 얼굴무늬 수막새 (직장가입자들)

처마 끝을 막는 기와(수막새)에 사람 얼굴이 웃고 있습니다. 신라의 미소라는 별명으로 유명합니다. 보물(2018),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얼굴무늬 수막새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 수막새는 보통 틀로 찍어 대량으로 만드는데, 이 기와는 손으로 빚은 것으로 보여 같은 것이 없습니다
  • 1934년 일본인 의사 다나카 도시노부가 경주 골동상에서 사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 박일훈 국립경주박물관장의 요청 끝에 1972년 10월 다나카가 직접 박물관을 찾아 기증했습니다. 38년 만의 귀환이었습니다

⚠️ 영묘사터에서 나왔다는 것은 골동상 구입품이라 “전해진다”는 수준입니다. 얼굴이 액막이(벽사) 뜻이라는 설명도 기록이 아니라 해석입니다.

9번·10번 금동 반가사유상 (캡스파&톱 · 개인 참가자)

두 팀이 같은 유물을 골랐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는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앉아 있어서, 카드만으로는 두 팀이 각각 어느 쪽인지 가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 점을 함께 소개합니다.

금동 반가사유상 옛 국보 78호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옛 78호 옛 83호
시대 6세기 후반 7세기 전반
높이(국립중앙박물관) 81.5cm 90.8cm
주조 틀 머리·몸을 따로 만들어 목에서 이음 틀 하나로 한 번에
두께 2~4mm, 얇음 10mm 안팎, 두꺼움
결과 속흙이 고와 공기가 안 빠져 결함이 많고, 다시 붓거나 이어 붙여 고침 모래 섞인 흙과 가는 식물 줄기로 공기 길을 내 결함을 미리 막음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휴대용 XRF·감마선 촬영·3D 스캔으로 조사한 결과(민병찬, 『미술자료』 89)입니다. 겉보기엔 같은 자세의 두 불상이 속은 정반대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옛 83호는 무릎에서 뺨까지 손이 닿도록 무릎을 살짝 들어 팔꿈치를 받쳤습니다.

⚠️ 예전 자료에 “83호는 두께 약 5mm에 결함이 없다”는 설명이 있는데, 얇고 결함이 많은 쪽은 78호입니다. 조사 방법도 CT가 아니라 감마선 촬영입니다. 두 상을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신라·백제)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11번 성덕대왕신종 (학교종이 에밀레)

무게 18.9톤, 높이 3.66m.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범종입니다. 771년 완성, 국보, 국립경주박물관.

  • 종이 완벽한 대칭이 아니라서 진동수가 아주 조금 다른 두 소리(168.52Hz와 168.63Hz)가 겹칩니다. 그 차이 0.11Hz 때문에 소리가 약 9.1초마다 커졌다 작아지기를 되풀이합니다(맥놀이)
  • 종을 치는 자리(당좌)는 충격이 가장 적게 전달되는 타격 중심에서 오차 0.3% 안에 있습니다
  • 1992년 제야 타종을 끝으로 정기 타종을 멈췄고, 2025년 9월 22년 만에 공개 타음조사를 했습니다

⚠️ 신라 장인이 맥놀이를 알고 일부러 설계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에밀레 전설도 옛 문헌에 없고, 1998년 성분 분석에서 사람 뼈의 인(P)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세한 과학은 성덕대왕신종 본편 영상에서 10분으로 풀었습니다.

12번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국보급사자들)

보통 석등이라면 팔각 기둥돌이 서는 자리에 사자 두 마리가 뒷발로 서서 가슴을 맞대고 등불을 떠받칩니다. 조각이 그대로 구조를 떠받치는 부재입니다. 통일신라(9세기경 추정), 국보, 국립광주박물관.

  • 1930년 지역 학교 후원회가 팔려다 당국이 허가하지 않자, 불법 반출업자들이 석등을 분해해 옮기다 면사무소 앞에서 주민들에게 발각돼 막혔습니다
  • 1937년 조선총독부가 서울로 옮겼고, 경복궁을 거쳐 1990년부터 국립광주박물관에 있습니다
  • 광양시는 1980년부터 제자리로 돌려 달라는 운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통일신라 말~고려 — 13번부터 18번

13번 송림사 오층탑 사리구 (사리걸즈)

1959년 칠곡 송림사 벽돌탑(전탑)을 수리할 때 2층 탑신의 거북 모양 돌함에서 나왔습니다. 보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신수331). 전체 높이 22.3cm.

  • 금동으로 지은 작은 집 안에 녹색 유리잔, 그 안에 녹색 유리병이 든 세 겹 구조입니다
  • 박물관은 “사리에 가까울수록 귀한 재료를 썼다”고 설명합니다. 유리가 금동보다 안쪽에 있으니, 그때는 유리가 금동보다 귀했던 셈입니다
  • 녹색 유리잔을 사리기로 쓴 예는 국내에서 이것뿐입니다. 잔에 붙은 유리 고리 12개는 서아시아에서 유행한 유리공예 기법입니다
  • 발견 당시 고리마다 유리알과 진주알이 있었지만 바깥 공기에 닿는 순간 모두 떨어졌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 유리의 성분이나 원산지를 분석한 자료는 찾지 못했습니다. “서아시아에서 들여왔다”가 아니라 “서아시아에서 유행한 기법“까지만 말할 수 있습니다.

14번 왕궁리 석탑 금동불 (금동율이입상)

높이 17.4cm의 작은 부처입니다. 1965년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을 해체 수리할 때 심초석의 품(品)자형 구멍 가운데 동쪽 구멍에서 청동 방울과 함께 나왔습니다. 국보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의 일부입니다.

  • 둥글넓적한 얼굴에 코밑 수염을 새긴 드문 모습입니다
  • 뒤에 두른 광배는 목 아래 촉에 끼우는 방식이라 끼웠다 뺐다 할 수 있습니다
  • 광배까지 한 세트로 온전히 전하는 이 시기 불상은 많지 않습니다
  • 사리장엄구 일괄은 2020년 국립익산박물관이 문을 열면서 55년 만에 익산으로 돌아왔습니다

⚠️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국립중앙박물관)부터 “통일신라 말~고려 초”(국립익산박물관), “10세기 초”까지 갈리고, 탑을 세운 시기도 백제부터 고려 초까지 설이 약 300년 폭으로 나뉩니다. “후백제 불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15번 천흥사 동종 (개인 참가자)

지금 남아 있는 고려 종 가운데 가장 큰 종입니다. 신라의 상원사 동종·성덕대왕신종 다음으로 큽니다.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 몸체의 위패 모양 틀 안 명문에 통화(統和) 28년, 곧 1010년 2월에 만들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통화는 거란 황제의 연호입니다
  • 바로 그해 11월 거란이 2차 침입해 개경이 함락되고 현종이 나주로 피난했습니다
  • 용뉴의 용이 신라 종보다 고개를 쳐든 모습, 위패형 명문 틀을 양각으로 새긴 것 모두 고려에서 새로 나타난 형식입니다

⚠️ 높이가 자료마다 174.2cm(국립중앙박물관)부터 128.3cm까지 크게 다릅니다. 용뉴를 포함하는지의 차이로 보이지만 확인하지 못해 박물관 값을 적었습니다. 음통이 소리에 주는 효과도 학설이 갈립니다.

16번 청자 칠보무늬 향로 (향로 업고 튀어)

높이 15.3cm 향로 하나에 음각·양각·투각·퇴화·상감·첩화, 여섯 가지 기법이 들어갔습니다. 국보, 국립중앙박물관(덕수2990).

청자 칠보무늬 향로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 뚜껑(향이 빠져나감)·몸통(향을 태움)·받침(떠받침), 세 부분이 기능을 나눠 맡습니다
  • 공 모양 뚜껑은 향이 피어오르도록 뚫어서(투각) 무늬를 냈고, 무늬가 만나는 곳마다 흰 점을 찍었습니다
  • 받침은 토끼 세 마리가 등으로 떠받치고, 토끼 눈은 검은 점으로 찍었습니다

⚠️ 몸통을 감싼 잎이 국화잎인지 연꽃잎인지는 설명이 갈려(국가유산포털은 국화잎) “겹겹의 꽃잎”으로 적습니다.

17번 청동 공양탑 (방탄고려단)

탑은 절 마당에 세운다고 생각하지만, 이 9층 탑은 건물 안에 두고 의식에 쓴 것으로 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고려2실(본관376). 전시 이름표는 「청동9층소탑」입니다.

  • 사각형을 여러 층 쌓은 누각 모양을 선처럼 가는 청동 뼈대로 만들고 지붕골까지 표현했습니다
  • 기단으로 오르는 계단 양옆에 인왕상, 1층 안에는 부처로 보이는 좌상과 금강역사가 있습니다
  • 국립중앙박물관이 3D 데이터를 공개한 유물입니다

⚠️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같은 이름의 11층 탑(74.1cm, 덕수5187)이 따로 있습니다. 이 9층 탑은 크기·출토지·제작 세기가 소장품 정보에 없어 적지 않았습니다.

18번 고려 금빛 사경 그림 (두꺼비집)

카드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이지만, 사진을 대조하면 국립중앙박물관의 「화엄경 그림」(본관12728) 입니다. 같은 박물관의 국보 감지금니 보현행원품(이건희 기증)과는 다른 유물입니다.

  • 쪽물로 물들인 푸른 종이(감지) 에 금으로 화엄경을 쓰고 그렸습니다. 푸른 바탕은 칠한 게 아니라 염색한 종이입니다
  • 금색은 금박을 붙인 게 아니라 금을 가루로 갈아 아교에 갠 금니를 붓으로 쓴 것입니다
  • 첫머리 그림은 선재동자가 여러 스승을 찾아다닌 끝에 보현보살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 긴 종이를 부채처럼 접는 절첩장이라 한 면 폭이 11cm 남짓입니다

⚠️ 제작 연도와 발원자는 소장품 정보에 없습니다. 국보 보현행원품의 연대(1341~1367년 추정)를 이 그림에 붙이면 틀립니다.

조선 — 19번부터 24번

19번 잉어 모양 백자 연적 (개인 참가자)

벼루에 물을 따르는 그릇입니다. 구멍이 둘이라, 공기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으면 대기압 때문에 물이 멈추고 손가락을 떼는 만큼 한 방울씩 떨어집니다. 스포이트와 같은 원리입니다. 잉어는 등용문, 곧 과거 급제를 비는 상징입니다.

⚠️ 카드 속 연적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 지방박물관 온라인 소장품에서 같은 개체를 찾지 못했습니다. 가장 비슷한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청화 물고기모양 연적」(신수91, 높이 6.5cm)이지만 머리와 꼬리 모양이 달라 다른 유물입니다. 그래서 시대·크기·소장처는 적지 않았고, “잉어 모양 백자 연적”이라는 국보·보물도 없습니다.

20번 김홍도 「서당」 (동산원)

동산원 팀은 그림 한 장을 통째로 재현했습니다. 보물 《단원 풍속도첩》 25점 가운데 한 점입니다(국립중앙박물관, 26.9×22.2cm).

  • 이 그림에는 벽도 책장도 없습니다. 배경을 지우고 인물만 남겼습니다
  • 훈장을 축으로 학동들을 둥글게 앉혀, 가운데 돌아앉아 훌쩍이는 아이에게 시선이 모입니다. 조선 그림에서 화면 전체가 원형 구도인 경우는 드뭅니다
  • 엷은 먹에 아주 옅은 푸른색·갈색만 썼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는 “덜 그리고 덜 칠함으로써 소재 자체를 돋보이게 했다”고 설명합니다

⚠️ 아이가 왜 우는지(회초리를 맞았는지, 글을 못 외웠는지)는 그림에 드러나지 않는 해석입니다. 화첩 전체를 두고는 김홍도 친필이 아니라는 위작설·공동작업설도 있지만, 공식 표기는 김홍도입니다.

21번·22번 단종·정순왕후 복위 시호 금보 (숨고르는 거북이 · 엉금엉금)

두 팀 모두 거북입니다. 21번 팀은 단종과 정순왕후의 금보 두 과를, 22번 팀은 정순왕후의 금보를 골랐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신수212·213)이고, 실물은 국립춘천박물관 상설전시에 나와 있습니다.

  • 단종은 왕위를 빼앗기고 1457년 영월에서 죽었고, 1698년(숙종 24) 에야 복위돼 이 시호를 받았습니다. 241년 뒤입니다
  • 단종 금보에는 「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지보」가 새겨져 있고, 손잡이는 거북입니다. 높이 6.9cm
  • “금보”라고 부르지만 국립춘천박물관 설명으로는 황동(구리+아연)에 금을 입힌 것입니다
  • 국립고궁박물관이 금보 155점을 분석한 결과, 조선 금보는 수은에 금을 녹여 바르는 아말감 도금을 썼습니다(이 두 점이 분석 대상이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국립춘천박물관 전시 설명은 “보물”이라고 적었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정보에는 지정 표시가 없어, 보물이라고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이라는 설명은 틀린 것입니다.

23번·24번 국새 제고지보 (국새에 발이 달렸나 · 난그취보)

두 팀이 같은 국새를 골랐습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만든 국새로, 조선 오백 년 동안 거북이던 손잡이가 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제후국에서 황제국이 됐다는 선언을 도장 모양으로 한 것입니다. 2021년 보물.

국새 제고지보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 1911년 3월, 국권 피탈 여섯 달 뒤 일본으로 반출돼 궁내청에 있었습니다
  • 1946년 8월 15일 미군정을 통해 돌아왔다가 한국전쟁 중 사라졌고, 1954년 6월 제고지보·칙명지보·대원수보 세 과만 다시 찾았습니다
  • 팀 이름 「국새에 발이 달렸나」가 바로 이 사연입니다

⚠️ 2014년 미국 오바마 대통령 방한 때 돌아온 국새는 황제지보 등 9과로, 제고지보가 아닙니다.

중앙아시아 — 25번

25번 복희와 여와 (복희 야호)

마지막은 한국 유물이 아닙니다. 중국 신장 투르판 아스타나 고분의 무덤 천장에 매달려 있던 7세기 그림으로, 1912년 일본 오타니 탐험대가 가져왔다가 조선총독부박물관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왔습니다. 188.5×93.2cm.

  •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뱀인 두 신이 꼬리를 꼬고 마주 봅니다
  • 손에 든 것은 컴퍼스와 곱자입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옛 우주관과 이어집니다
  • 위아래에 해와 달, 둘레에 별자리를 그려 작은 우주를 이룹니다. 가장자리 구멍은 천장에 박아 고정한 흔적입니다
  • 바탕은 원래 푸른색이었는데 가장자리를 빼고 대부분 초록으로 변했습니다

⚠️ 바탕천이 마(麻)인지 비단인지 자료마다 표기가 다르고(박물관 큐레이터 글은 마), 푸른색이 초록으로 변한 화학적 원인은 공식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결선을 보기 전에

25팀이 고른 유물을 보면 대회가 무엇을 겨루는지가 보입니다. 금관·금귀걸이처럼 한눈에 화려한 유물만 있는 게 아닙니다. 돌칼, 깨진 기와, 잉어 연적, 그림 한 장, 도장까지 있습니다. 같은 유물을 두 팀이 고른 경우도 세 번(반가사유상·정순왕후 금보·제고지보)이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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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 결과 — 대상은 19번 잉어 연적 (2026-09-19 추가)

9월 19일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결선이 열렸고, 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상금 300만 원)은 백자 잉어모양 연적으로 분장한 전은슬 씨(22)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글의 19번입니다.

상 수상 이 글의 번호
대상 전은슬 — 백자 잉어모양 연적 19번
최우수상(관장상) 이대양 — 반가사유상 9·10번
최우수상(관장상) 국보급사자들 —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12번
최우수상(관장상) 무연모 — 청동 방울 3번
입선 이혜정 — 간돌검 1번

기사에 이름이 확인된 수상만 적었습니다. 최우수상은 5팀, 우수상 5팀, 입선 14팀인데 나머지 명단은 아직 공개된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대상을 받은 그 유물이 이 글에서 유일하게 개체를 특정하지 못한 유물이라는 점입니다. 위 19번에 적었듯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 지방박물관 소장품 검색에서 카드 사진과 같은 연적을 찾지 못해, 시대·크기·소장처를 적지 못했습니다. 화려한 금관이나 국보 불상이 아니라, 손바닥에 올라가는 문방구가 대상을 받은 셈입니다.

참고 자료

관련 영상

유튜브 채널 「옛것의 과학」에서 다른 편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은요

저는 국중박 분장놀이 결선 25팀이 고른 유물들을 정리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놓치기 쉬운 것은 화려한 국보 자체가 아니라 “아직 결론이 안 난 이야기”라고 봅니다. 화순 대곡리 팔주령처럼 방사성탄소연대와 형식 연대가 200년 넘게 어긋난 채 남아 있고, 금령총 기마인물형 토기는 240cc 용량을 근거로 등잔설까지 나온 상태인데, 이런 미해결 지점이야말로 유물이 죽은 물건이 아니라 지금도 연구가 움직이는 대상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과소평가됐다고 보는 쪽은 금동대향로의 구멍 12개 가운데 8개를 나중에 넓혔다는 연구입니다. 굴뚝 효과를 맞추려고 완성품을 다시 손댄 흔적은, 백제 장인이 시행착오를 거치는 보통의 기술자였다는 걸 보여 주는 대목이라 어떤 전설보다 실감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선에서 어느 팀이 대상을 받든, 이 대회의 진짜 효용은 사람이 유물로 변신하는 그 잠깐 사이에 우리가 유물 하나의 뒷이야기를 찾아보게 만드는 데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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