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미국 캔자스시티의 넬슨앳킨스 미술관에는 높이 2.4m에 이르는 목조 관음상이 있습니다. 오른쪽 팔뚝을 뺀 전체와 받침까지 통나무 한 덩이로 깎은 작품입니다. 다만 이 상은 요·금대(11~12세기) 중국 유물이고, 미술관의 공식 명칭도 「Guanyin of the Southern Sea(남해관음)」입니다. 자세 때문에 수월관음으로 통칭되기는 하지만 우리 것은 아닙니다.
같은 도상을 고려는 조각이 아니라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에는 조각에는 없는 기술이 들어 있습니다.
위 사진은 조선 후기 「의겸 등 필 수월관음도」입니다. 고려 작품이 아니라 시대가 다르지만, 도상의 구성을 보여 주기 위해 실었습니다.
떨어졌어야 할 색
비단은 얇고 물감은 무겁습니다. 안료를 두껍게 얹으면 세월이 지나면서 들뜨고, 결국 조각조각 떨어져 나갑니다. 이것을 박락(剝落)이라고 합니다. 700년 된 그림이라면 색이 남아 있는 쪽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데 고려불화는 색이 살아 있습니다. 붉은색과 군청, 금니가 지금도 깊이를 유지합니다.
앞이 아니라 뒤에 칠했습니다
비결은 칠한 위치입니다. 고려 화가들은 색을 화면의 뒷면에 칠했습니다. 이것을 배채법(背彩法)이라고 합니다.
비단(화견)은 거의 투명에 가까울 만큼 얇습니다. 뒤에서 칠하면 그 색이 앞으로 은은하게 배어 나옵니다. 앞면에 직접 칠했을 때보다 훨씬 부드럽고 깊은 색이 됩니다.
부위마다 방식이 다릅니다.
- 살빛은 뒤에서 백색 안료(연백)를 칠하고, 앞에서 붉은색이나 황토계를 엷게 얹습니다. 앞뒤를 함께 쓰는 셈입니다.
- 불의(佛衣)는 뒤에서 붉은색을 칠하고 앞은 칠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파스텔 톤에 가까운 색이 나옵니다.
수월관음도의 그 투명한 사라(紗羅) 베일 — 속의 옷과 몸이 비쳐 보이는 그 표현이 이 방식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오래 버티는 것일까
배채는 안료의 밀착도를 높여 박락과 얼룩, 변색을 지연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면에 안료를 두껍게 얹지 않으니 애초에 떨어져 나갈 것이 적습니다. 연백을 배채한 채색층의 내구성을 실험으로 비교한 연구도 나와 있습니다.
다만 “배채법 덕분에 700년을 버텼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보관 환경, 장황(표구) 방식, 재료의 질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합니다. 배채층은 자외선보다 대기오염물질(NO₂)에 취약하다는 한계도 확인돼 있습니다. 기여한 요인 중 하나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기법은 고려에서 끝나지 않고 조선시대 초상화로 이어집니다.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
수월관음도의 출전은 『화엄경』 「입법계품」입니다. 진리를 구하러 53명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던 선재동자가 관세음보살을 만나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구성은 대체로 일정합니다. 화면 중앙에 보타락가산의 바위에 반가좌한 관음보살을 압도적으로 크게 놓고, 오른쪽 아래에 합장한 선재동자를 아주 작게 배치합니다. 둘의 크기 차이가 그대로 공간의 깊이가 됩니다.
수월관음은 재난과 질병을 막고 여행자를 지켜 준다고 믿어져 고려에서 널리 신앙됐습니다. 고려불화의 주요 도상이었지만 조선시대에는 드물어집니다.
남은 것은 어디에 있나
현존하는 고려불화는 약 160점으로 집계됩니다. 그중 수월관음도가 40여 점입니다. 자료에 따라 46점으로 세기도 해서 정확한 수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소재입니다. 대부분이 일본에 있습니다. 한국에 남은 것은 벽화까지 합쳐 20점 안팎이고, 미국 미술관 소장분은 16점으로 집계됩니다. 현존 고려불화 중 가장 크고 기법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일본 경신사(鏡神社)본은 1391년에 일본으로 건너갔고, 지금은 사가현립박물관에 위탁 보관돼 있습니다.
마치며
앞에 칠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았습니다. 더 많이 바르지 않은 선택이 결과적으로 더 오래 가는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그 그림들이 지금 대부분 나라 밖에 있다는 사실은, 기술의 이야기와는 다른 층위의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 자료
- 국가유산청 월간국가유산사랑, 「고려의 혼을 담다 수월관음도」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수월관음도」
- Freer|Sackler, 「고려 불화의 제작기법과 재료, 그리고 장황」
- KCI, 「연백 배채 횟수에 따른 견본 채색층의 내구성 비교」
- Nelson-Atkins, Guanyin of the Southern Sea
관련 영상
쇼츠 「물감을 앞이 아니라 뒤에 칠했더니 700년이 지나도 안 벗겨졌습니다」 — 영상 업로드 후 링크 연결 예정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제 생각은요
저는 수월관음도를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검색해서 나오는 설명만 믿었습니다. 막상 해보니 생각과 가장 달랐던 건 ○○○이었습니다(여기에 직접 느낀 점을 적으세요). 저와 비슷한 상황이라면 ○○○부터 챙기시길 권하고, 반대로 ○○○인 경우라면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정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이렇게 판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