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병좌상 — 부처 두 분이 한 대좌를 나눠 앉은 이유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 — 한국에 남은 이불병좌상 도상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불상은 한 분씩 모시는 것이 보통입니다. 삼존불처럼 가운데 부처 한 분에 좌우로 보살이 서는 구성은 흔하지만, 부처 두 분이 같은 크기로 나란히 앉는 도상은 다릅니다.

이불병좌상(二佛竝坐像)은 그 드문 도상입니다. 하나의 대좌 위에 부처 두 분이 자리를 반으로 나눠 앉습니다.

왜 자리를 나눠 앉았나 — 법화경 견보탑품

이 구도에는 정확한 출처가 있습니다. 『법화경』의 견보탑품(見寶塔品) 입니다.

장면은 이렇게 전개됩니다.

  1.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합니다
  2. 그러자 땅에서 칠보탑이 솟아오릅니다
  3. 탑 안에서 과거불 다보여래(多寶如來) 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 이 설법이 진리임을 증명하겠다는 것입니다
  4. 탑문이 열리고, 다보여래가 자리를 반으로 나눠 석가모니에게 내어줍니다
  5. 두 부처가 한 자리에 나란히 앉습니다

다보여래는 이미 열반에 든 과거의 부처입니다. 그가 현재의 부처가 설하는 가르침을 보증하러 나타난 것입니다. 시간이 다른 두 부처가 같은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곧 가르침이 시간을 넘어 같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과거불과 현재불이 한 자리에 나란히 앉는 유일한 도상이고, 중국 북위 대에 법화신앙과 함께 크게 유행했습니다.

발해가 고구려를 이었다는 물증

이 도상이 한국사에서 특별해지는 지점은 발해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발해실의 공식 설명은 이 불상의 양식이 고구려 불상을 계승한 것이라고 밝힙니다. 근거가 되는 요소들입니다.

  • 하나의 대좌에 두 부처
  • 좌우에 협시상
  • 뒤로는 배 모양(주형) 광배가 하나로 이어짐 — 두 분을 각각 감싸는 게 아니라 하나의 광배가 둘을 함께 감쌉니다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는가는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던 주제입니다. 문헌 기록만으로는 다투기 쉬운 문제지만, 불상 양식은 다릅니다. 만드는 손이 이어져야 양식이 이어집니다.

한국에는 세 구 정도뿐

이 도상이 얼마나 드문지 보면 이렇습니다. 한국에서는 발해를 빼면 전 시대를 통틀어 세 구 정도만 알려져 있습니다.

  •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 (보물)
  • 청송 대전사 청동상
  • 황룡사지 출토품

중국 북위에는 다수가 있고 한국에도 소수가 있으니, “이불병좌상은 발해에만 있다”는 서술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발해에서 이 도상이 유독 집중적으로 나타난 것은 사실입니다.

마애이불병좌상 클로즈업 — 나란히 앉은 두 부처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그런데 실물은 한국에 없습니다

여기가 이 편의 여운입니다.

원품은 중국 지린성 훈춘의 팔련성(八連城) 절터에서 나왔습니다. 팔련성은 785~794년 발해의 수도(동경용원부) 였던 곳입니다.

  • 1940년대 일본인(사이토 마사루)이 발굴했습니다
  • 파편을 포함해 약 8구가 나왔습니다
  • 대부분 도쿄대학에 있고, 2구는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 있습니다
  • 재질은 석조이고, 대표작의 높이는 29cm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발해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복제품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발해의 수도에서 나온, 고구려 양식을 이은 불상이 — 일본인의 손에 발굴돼 — 지금은 도쿄와 타이베이에 흩어져 있고 — 한국에는 복제품만 있습니다. 유물 하나에 20세기 동아시아사가 압축돼 있는 셈입니다.

“팔련성 출토품이 전부 도쿄대에 있다”는 서술이 도는데, 대만에 2구가 있고 일부는 분산 이력이 있습니다. “대부분 도쿄대학에” 가 정확합니다.

코스프레로 되살아난 유물

이 불상이 최근 다시 화제가 된 계기는 뜻밖의 곳이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분장놀이(코스프레) 행사입니다. 2025년 본선에 오른 화제작 가운데 “고구려에서 발해로 계승된 이불병좌상 표현” 을 구현한 팀이 있었습니다.

언론이 쓴 이 설명은 국립중앙박물관 발해실 전시품 「두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불상」 의 공식 설명과 그대로 일치합니다.

다만 정확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그 팀이 발해실 전시품을 참조했다는 직접 보도는 없고, 도상이 일치한다는 데서 추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본선 10팀 선정은 확정이지만 등수를 명시한 보도는 없습니다. 1등은 황오동 금귀걸이 팀이었습니다. “수상작”이라고 쓰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몸으로 되살린 유물의 실물이 정작 한국에 없다는 것 — 이 대비가 이 이야기를 오래 남게 합니다.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 — 바위에 새겨진 두 부처와 주변 경관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 이 글의 사진은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입니다. 발해 팔련성 출토 원품은 국외에 있어 공공누리 제1유형 사진이 없습니다. 같은 도상의 국내 사례로 대신했습니다.

확인해 둘 것

  • 재질을 “응회암”으로 특정하지 않습니다. 석조까지만 확인됐습니다.
  • “이불병좌상은 발해에만 있다” 는 틀립니다. 한국에도 소수 있고 중국 북위에 다수입니다.
  • 분장놀이 “수상작” 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습니다. 본선 진출까지만 확인됩니다.

참고 자료

관련 영상

쇼츠 「불상은 한 분씩 모시는데 이 불상은 두 분이 한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 영상 업로드 후 링크 연결 예정

유튜브 채널 「옛것의 과학」에서 다른 편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은요

저는 이불병좌상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가장 놓치기 쉬운 부분이 도상의 희귀함보다 유물의 소재라고 봅니다. 발해 수도 팔련성에서 나온 원품이 도쿄대학과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 흩어져 있고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복제품만 있다는 사실은, 발해가 고구려를 이었다는 물증을 우리가 남의 손을 빌려서만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보여래가 자리를 반으로 나눠 석가모니에게 내어주는 견보탑품의 장면이 시간을 넘는 계승을 말하는 도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작 그 계승의 증거가 제자리에 없다는 대비가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는 분장놀이로 이 불상을 몸으로 재현한 팀의 시도가 단순한 화제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물이 없는 자리를 기억이 대신 채우는 방식이고, 이런 글과 재현이 쌓여야 언젠가 원품의 행방을 묻는 목소리도 힘을 얻는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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