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조선의 국새는 오백 년 동안 손잡이가 거북이었습니다. 그런데 1897년에 만든 국새에는 용이 올라앉았습니다. 장식을 바꾼 것이 아니라, 나라의 지위가 달라졌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거북과 용은 등급이 다릅니다
동아시아의 인장 제도에서 손잡이 모양은 격식을 나타냅니다. 거북 손잡이(귀뉴)는 제후국의 격식이고, 용 손잡이(용뉴)는 황제국의 격식입니다. 조선은 명·청의 책봉을 받는 제후국의 위치에 있었으므로 거북을 썼습니다.
1897년 10월,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해에 새로 만든 국새들이 용 손잡이를 얹은 것은 그 지위 변화를 인장 형식으로 못 박은 것입니다. 2021년 이 국새들이 보물로 지정될 때도 이 점이 지정 사유의 핵심으로 언급됐습니다.
제고지보(制誥之寶)는 그중 하나로, 황제가 고위 관료를 임명하는 문서나 백성에게 명을 알리는 문서에 찍던 국새입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여섯 달 뒤
1910년 8월 국권을 잃고 여섯 달이 지난 1911년 3월, 일제는 대한제국의 국새들을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이후 일본 궁내청이 소장했습니다.
돌아온 것은 광복 이듬해입니다. 1946년 8월 15일 미군정이 환수해 한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다시 유실됐고, 1954년 6월에 제고지보·칙명지보·대원수보 세 과만 회수됐습니다.
쇼츠에서는 “두 번 빼앗기고 두 번 돌아왔다”고 압축했지만, 실제로는 두 번째 회수에서 상당수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병합’이라는 말에 대하여
영상에서는 분량 때문에 ‘병합’이라는 짧은 단어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오래된 문제 제기가 있습니다.
병합(倂合)과 합병(合倂)은 모두 양쪽의 동의로 두 나라가 하나로 합쳐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1910년의 조약은 강제로 맺어진 것이므로 이 단어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학계에서 계속 나왔습니다. 실제로 ‘병합’은 일본 측이 만든 용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안으로 「국권 피탈」, 「강제 병합」, 「경술국치」가 쓰이고, 조약의 강제성을 드러내기 위해 「한국병합늑약」이라는 표현을 제안한 연구자도 있습니다. 교과서조차 표기가 통일돼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영상에서는 짧은 단어를 택했지만 적절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흔한 오해 하나
2014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국새를 반환한 일을 기억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때 돌아온 것은 황제지보 등 아홉 과로, 이 글에서 다루는 제고지보와는 다른 건입니다. 두 사건을 섞어 이야기하는 경우가 잦아 짚어 둡니다.
지금은 어디에 있나
국가유산포털 기준으로 소재지는 전북 전주시, 관리단체는 국립중앙박물관입니다. 국립전주박물관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속관이라 이렇게 표기됩니다. 상설 전시 여부는 관람 전에 박물관에 확인하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마치며
도장 하나의 손잡이가 거북에서 용으로 바뀌는 데는 오백 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 도장이 나라를 떠났다 돌아오기를 두 번 반복하는 데는 오십 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유물의 이동 경로가 그 시대의 이력서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국새가 그렇습니다.
참고 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국새 제고지보」
- 국립중앙박물관 국보·보물 검색, 「국새 제고지보」
- 국가유산청, 「’국새 대군주보’ 등 국새 4과 보물 지정」
- 노컷뉴스, 「한일 ‘병합’, 일본이 만든 단어…국사교과서에는 제각각」
관련 영상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