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소장 중인 로스차일드 컬렉션의 고판화를 복원하면서, 유럽에서 쓰던 복원용 종이 대신 한국의 한지를 골랐습니다. 경북 문경에서 전통 방식으로 뜬 종이였습니다. 자국 문화재를 고치는 데 낯선 나라의 종이를 쓴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100년과 1000년을 가르는 것은 산도
종이가 삭는 가장 큰 원인은 산성입니다. 19세기 이후 대량 생산된 서양 종이는 사이징 과정에서 산성 물질을 쓰는데, 이 산이 시간이 지나면서 종이 안의 섬유를 스스로 끊어 놓습니다. 수십 년에서 100년쯤 지나면 누렇게 변색되고, 손을 대면 가장자리부터 부스러집니다. 근대 이후 출판물이 그 이전 고서보다 오히려 상태가 나쁜 경우가 흔한 것이 이 때문입니다.
한지는 제법 자체가 다릅니다. 닥나무 껍질을 잿물에 넣고 삶는데, 잿물은 나뭇재를 우려낸 천연 알칼리입니다. 이 과정을 거친 종이는 중성에 가깝게 남습니다. 산성화가 진행될 출발점이 없으니 세월을 훨씬 오래 견딥니다.
섬유가 길어서 질기다
두 번째 이유는 재료의 구조입니다.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인피섬유는 길이가 깁니다. 종이를 뜰 때 이 긴 섬유들이 서로 얽히면서 그물처럼 짜이는데, 잡아당기는 힘과 찢는 힘 모두에 강한 종이가 됩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습도가 오르내려도 크기 변화가 적다는 점입니다. 복원용 종이는 원본 뒤에 덧대어 붙이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종이가 늘었다 줄었다 하면 원본까지 함께 뒤틀립니다. 치수 안정성이 좋다는 평가가 복원가들에게는 결정적인 조건입니다.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8세기의 실증 사례
이론만으로 1,000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8세기에 닥종이에 찍은 목판 인쇄물인데, 1,200년이 넘도록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종이가 그 세월을 버틴다는 것을 실물이 보여 준 셈입니다.
루브르만의 사례도 아닙니다. 전주에서 만든 한지는 이탈리아 마르차나 국립도서관을 비롯한 유럽의 고문서 복원 현장에도 쓰였습니다.
마치며
두 가지는 짚어 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먼저 한지는 아직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지 않았습니다. 2026년 12월 무렵 정부간위원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라, 지금 시점에 “등재된 유산”이라고 쓰면 사실과 다릅니다. 또 하나, 제지술 자체는 중국에서 시작됐습니다. 한지를 “종이의 원조”라고 부르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한지의 가치는 최초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잿물로 삶고 긴 섬유를 얽어 뜨는 방식이 결과적으로 세월에 강한 종이를 만들어 냈고, 그 성질을 다른 나라 복원가들이 실무에서 확인해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옛날 문풍지에 구멍 뚫던게 생각나네요. 한지는 우리곁에 항상있었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어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 되길 바랍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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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