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1971년 여름, 전남 화순의 한 농부가 배수로를 파다 푸르스름한 쇳조각들을 캐냈습니다. 흙투성이 고철로만 보였던 이 조각들은 이듬해 국보가 됩니다.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이 이 유물의 이야기에서 가장 아슬아슬한 대목입니다.
국보를 엿과 바꾼 날
농부는 파낸 청동 조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엿장수에게 넘겼습니다. 받은 대가가 무엇이었는지는 출처마다 다르게 전해져, 여기서는 “엿장수에게 넘어갔다”까지만 적습니다.
그런데 넉 달 뒤, 그 엿장수가 전라남도청을 찾아갑니다. 예사 물건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신고가 접수된 날짜는 1971년 12월 20일입니다.
나흘 뒤인 12월 24일, 서울에서 학자 두 사람이 프로펠러기를 타고 광주로 내려왔습니다. 문화재연구소의 조유전(당시 30세)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윤무병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장 조사는 한나절 만에 끝났습니다. 배수로 공사로 무덤이 이미 뭉개진 뒤여서, 유물이 어떻게 놓여 있었는지도 무덤이 어떤 구조였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듬해 1972년 3월 2일, 열한 점은 한꺼번에 국보로 지정됩니다. 발견부터 국보까지 일곱 달. 우리 문화재 역사에서 손꼽히게 빠른 속도였습니다.
보상은 아무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개운치 않은 끝이 있습니다.
- 엿장수: 신고를 마친 뒤 사라져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어떤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 농부: 신고 없이 넘긴 이력 때문에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국보를 지켜낸 결정적 판단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열한 점의 구성
발견된 유물은 모두 열한 점입니다.
| 유물 | 수량 | 비고 |
|---|---|---|
| 세형동검 | 3 | 1점은 칼날이 손상 |
| 팔주령 | 2 | 지름 12.5cm / 12.9cm, 판 두께 0.3cm |
| 쌍두령 | 2 | 길이 17.8~17.9cm |
| 잔무늬거울 | 2 | 지름 18cm / 14.6cm |
| 청동도끼 | 1 | |
| 청동새기개 | 1 |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여덟 개의 방울, 팔주령
이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팔주령(八珠鈴)입니다. 손바닥만 한 여덟 갈래 별 모양 판의 꼭짓점마다 둥근 방울이 하나씩 붙어 있습니다. 방울마다 갸름한 구멍이 나 있고, 그 안에 지름 약 7mm의 청동 구슬이 들어 있어 흔들면 여덟 개가 한꺼번에 웁니다.
판 가운데에는 햇살처럼 뻗은 무늬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끈을 꿸 고리가 있어 손에 쥐거나 매달아 흔들 수 있게 돼 있습니다. 판 두께는 0.3cm에 불과합니다. 아령처럼 생긴 쌍두령(雙頭鈴)도 양 끝에 같은 구조의 방울을 달았습니다.
여기서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팔주령은 다른 곳에서도 나왔지만, 어디서 나왔는지가 확실한 것은 대곡리 것이 유일합니다. 국보로 지정된 다른 팔주령(전 논산 출토품)은 출토지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대곡리 팔주령의 가치는 형태만이 아니라 출토 정황이 확인된 유일한 사례라는 데 있습니다.
닫힌 방울 속 구슬은 어떻게 넣었을까
팔주령의 방울은 겉으로 보면 이음매도 뚜껑도 없는 완전히 막힌 형태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구슬이 들어 있어 흔들면 소리가 납니다. 나중에 넣은 것이 아니라면, 애초에 구슬을 품은 채로 한 번에 부어냈다는 뜻입니다.
학계가 유력하게 보는 것은 밀랍 주조입니다. 밀랍으로 방울과 그 안의 구슬 형태를 함께 빚고 흙을 씌워 구우면 밀랍이 녹아 흘러나가고, 그 빈 자리에 청동물을 부으면 몸체와 구슬이 한 번에 완성된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정확한 공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밀랍 주조 외에 모래 거푸집설과 돌 거푸집설도 나란히 살아 있고, 어느 쪽이라고 확정한 학술적 결론은 없습니다.
검과 거울에 다른 합금을 썼습니다
확실한 것은 합금을 다루는 눈썰미 쪽입니다.
같은 시대 청동검은 구리에 주석을 15% 안팎으로 섞었습니다(구리 75 : 주석 15 : 납 10 정도). 날이 부러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형동검은 만주의 비파형동검에서 갈라져 나와 한반도에서만 유행한 형태라 ‘한국형 동검’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런데 거울은 다릅니다. 잔무늬거울류는 주석을 30%대까지 올렸습니다(국보 정문경의 경우 34.3%). 주석이 많으면 잘 깨지는 대신 색이 희어지고 반사율이 올라갑니다.
주석 22% 부근에서 청동의 경도가 최대가 되고 그 이상은 단단하지만 잘 깨집니다. 부러지면 안 되는 검과 빛나야 하는 거울에 서로 다른 배합을 쓴 것 — 2,300년 전의 재료공학적 선택입니다.
공방은 어디에 있었을까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전남 영암에서 전해 온 활석 거푸집 한 벌이 국보로 남아 있는데, 2003년 화순 백암리에서 나온 청동기가 이 거푸집의 규격과 맞아떨어졌습니다. 곱돌이라 불리는 활석은 1,000도가 넘는 쇳물을 여러 번 부어도 견딥니다.
대곡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청동기 공방이 있었다는 정황입니다.
학설이 뒤집힌 이야기
한때 교과서는 우리 청동기에 아연이 많이 섞여 있어 시베리아 계통의 독자 기술이라고 가르쳤습니다. 1966년 북한의 분석 결과에서 나온 학설이었습니다.
그런데 1983년 반례가 나왔고, 1986년 재분석에서는 아연이 모두 1% 미만으로 확인됐습니다. 학설은 폐기됐고 교과서는 다시 쓰였습니다. 현재는 발해연안 계통설이 우세합니다.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37년 만의 재발굴 — 마지막 날 오전 11시 30분
1971년의 조사가 한나절로 끝난 탓에 무덤의 구조는 오래 공백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2008년 2월 13일부터 21일까지 국립광주박물관 조사단이 그 자리를 다시 팠습니다.
이번에는 무덤 구조가 확인됐습니다. 적석목관묘였습니다. 묘광은 330×280cm, 통나무 관은 어른 한 사람이 누울 180×60cm 크기였고, 관 위로 돌무지를 3~4단 쌓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조사 마지막 날인 2월 21일 오전 11시 30분, 무덤 바닥 남쪽에서 검 끝 2cm가 흙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세형동검 2점이 통나무 관 바깥에서 겹쳐진 채 나온 것입니다. 발굴자 은화수는 그날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야호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왜 관 안이 아니라 바깥에 두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200년이 어긋난 연대
숙제 하나는 풀렸지만 새 수수께끼도 생겼습니다.
- 유물 형식학: 기원전 3세기 후반~2세기
- 통나무 관의 방사성탄소연대: 기원전 6~5세기대
200년 이상 어긋납니다. 이 불일치는 지금도 풀리지 않았고, 어느 쪽이 맞는지는 다음 연구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글에서 시대를 “기원전 3~2세기경”으로 적은 것은 통설을 따른 것이며, 확정된 연대가 아닙니다.
방울을 흔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검과 거울과 방울이 한 무덤에서 함께 나왔다는 것은 여러 힘이 한 사람에게 모였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검은 무력, 거울은 빛, 방울은 소리입니다. 무기이자 제사 도구인 물건들을 한꺼번에 가진 사람 — 정치와 종교를 한 손에 쥔 지배자가 있었다는 해석이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단군신화에서 하늘이 내려 준 천부인 세 가지를 검과 거울과 방울로 보는 후대의 해석과 겹쳐 보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다만 신화와 유물을 바로 이을 수는 없습니다. 『삼국유사』 원문은 천부인이 무엇인지 명시하지 않습니다. 고고학이 찾아낸 권력의 세 상징과 신화의 세 신물이 나란히 놓인다는 것까지가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글이 없던 시대에 신의 목소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소리였습니다. 방울을 쥔 사람이 그 소리를 냈고,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을 것입니다.
마치며 — 고철이 될 뻔한 소리
열한 점의 청동기는 하마터면 녹여져 엿가위나 놋그릇이 될 뻔했습니다. 문화재는 이렇게 아슬아슬한 우연 위에서 살아남기도 합니다.
유물은 현재 국립광주박물관 선사문화실에 있습니다. 2008년 수습된 세형동검 2점도 같은 곳에 있습니다. 다만 이 2점의 국보 추가 지정 여부는 확인되지 않아, 공식 지정 수량은 여전히 11점입니다.
그날 엿장수가 그냥 지나쳤다면, 우리는 2,300년 전의 소리를 영영 몰랐을 것입니다.
참고 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 경향신문 조유전 연재 — 화순 대곡리 발견기(2008)
- 국립중앙박물관 — 2008년 재발굴 특별공개
- 디지털화순문화대전 — 대곡리 청동기
- 우리역사넷 — 청동기 성분 분석(아연 논쟁)
- 우리역사넷 — 세형동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