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의 허리선은 흠이 아닙니다 — 사발 두 개를 맞붙여야 했던 이유

백자 달항아리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달처럼 둥근 항아리인데, 자세히 보면 좌우가 딱 맞지 않습니다. 어깨 한쪽이 살짝 처져 있거나, 허리께에 가로로 선이 하나 지나갑니다.

흠으로 보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선이 이 항아리를 만든 방법입니다.

큰 그릇은 물레로 한 번에 올릴 수 없습니다

이유는 재료의 물성에 있습니다.

물레 성형은 젖은 점토를 손으로 밀어 올리는 작업입니다. 이때 점토는 제 무게를 견디는 만큼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 젖은 점토는 물을 머금어 무겁습니다
  • 위로 올릴수록 아래쪽 벽이 받는 하중이 커집니다
  • 어느 높이를 넘으면 점토가 스스로 버티는 한계(항복 강도)를 넘어섭니다
  • 그 순간 벽이 주저앉거나 한쪽으로 밀려 형태가 무너집니다

게다가 달항아리는 가운데가 가장 볼록한 형태입니다. 벽을 바깥으로 밀어낼수록 위쪽 점토는 아래에서 받쳐 주는 면이 좁아집니다. 높이도 문제인데 형태까지 불리한 셈입니다.

그래서 높이 40cm를 넘는 둥근 항아리를 한 덩어리로 올리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접동 — 두 사발을 맞붙인다

조선의 도공이 쓴 해법은 나눠 만들어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접동(接胴)이라고 부릅니다.

공정은 대략 이렇습니다.

  1. 반구형 사발을 두 개 만듭니다. 각각은 물레로 무리 없이 올릴 수 있는 크기입니다
  2. 적당히 굳을 때까지 말립니다. 너무 무르면 붙일 때 주저앉고, 너무 마르면 접합부가 붙지 않습니다. 손자국이 남지 않되 형태는 유지되는 상태 — 가죽처럼 되었다고 해서 가죽굳기라고 부릅니다
  3. 하나를 뒤집어 다른 하나 위에 맞붙입니다. 맞닿는 면에 흠집을 내고 묽은 점토를 발라 접착합니다
  4. 접합부를 다듬습니다. 안팎에서 눌러 붙이고 물레를 돌리며 표면을 정리합니다
  5. 굽과 아가리를 붙이고 유약을 입혀 굽습니다

다듬어도 선은 남습니다

접합부를 아무리 다듬어도 가장 볼록한 허리께에는 그 선이 남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접합면의 점토는 그 자리에서 두 번 다뤄진 부분이라 밀도와 수분 상태가 주변과 미세하게 다릅니다. 가마에서 구울 때 도자기는 크게 줄어드는데, 수축률이 조금만 달라도 그 경계가 표면에 드러납니다.

좌우 비대칭도 같은 이유입니다. 두 사발을 손으로 맞추는 과정에서 중심축이 완전히 일치하기는 어렵고, 소성 중에도 각자 조금씩 다르게 줄어듭니다.

“일부러 비대칭으로 만들었다”는 아닙니다

여기서 자주 섞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달항아리의 비대칭을 “의도된 무기교의 미”로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둘을 구분해야 합니다.

  • 비대칭은 제작 방식의 결과입니다. 두 개를 붙이는 이상 완전한 대칭은 나오지 않습니다
  • 그것을 아름답게 본 것은 후대의 감상입니다. 조선의 도공이 “어긋나게 만들자”고 결심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도공이 그 어긋남을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갈아내고 메워서 억지로 맞출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선택까지가 당대의 것이고, 그 이후의 해석은 우리 몫입니다.

‘달항아리’라는 이름은 근대에 붙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이 그릇을 달항아리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백자대호(白磁大壺), 즉 ‘큰 백자 항아리’라는 식으로 불렀습니다.

달항아리라는 이름은 20세기 중반 한국 미술계에서 정착했습니다. 화가 김환기가 이 항아리에 깊이 매료돼 그림과 글에 거듭 남겼고,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글이 이 그릇의 미감을 널리 알렸습니다. 둥글고 흰 형태를 보름달에 빗댄 표현이 이름이 된 것입니다.

즉 이 이름 자체가 근대의 시선입니다. 조선 후기의 실용 기물이 20세기에 와서 한국적 미의 상징으로 다시 발견된 셈입니다.

흰 빛깔은 어디서 오나

달항아리의 흰색은 세 가지가 겹쳐 만들어집니다.

  • 태토 — 철분이 적은 흰 흙을 씁니다. 철분이 많으면 구웠을 때 누렇거나 붉게 뜹니다
  • 유약 — 장석질 유약을 씁니다. 투명에 가까운 유약이라 아래의 흰 태토가 그대로 보입니다
  • 소성 분위기 — 가마 안의 산소를 줄인 환원 소성을 하면 철분이 푸른 기를 띠어 차가운 흰색이 되고, 산화 소성이면 따뜻한 유백색이 됩니다

같은 백자라도 유백색·설백색·청백색으로 갈리는 것은 이 조합의 차이입니다. 다만 정확한 소성 온도와 태토 배합은 가마마다 달라 하나의 수치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접합선을 직접 확인하는 법

실물이나 사진에서 확인할 때 볼 지점입니다.

  • 최대경 부근을 옆에서 봅니다. 빛이 스치는 각도에서 가로로 지나는 미세한 능선이나 색조 차이가 보입니다
  • 아가리를 위에서 내려다봅니다. 완전한 원이 아니라 살짝 타원이거나 중심이 어긋난 경우가 많습니다
  • 윤곽선을 좌우로 접어 봅니다. 사진을 좌우 반전해 겹치면 어깨 높이가 다른 것이 드러납니다

현대의 재현도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여러 도예가가 달항아리를 만듭니다. 도구와 가마는 훨씬 좋아졌지만 여전히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두 사발의 굳기를 맞추는 타이밍, 접합부가 소성 중에 갈라지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큰 기물이 가마 안에서 제 무게로 주저앉지 않게 하는 것 — 이 세 가지가 여전히 관건입니다. 성공률이 높지 않아 여러 점을 구워 한두 점을 건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지금 어디 있나

여러 점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국립고궁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고, 해외에도 대영박물관 등에 소장품이 있습니다.

확인해 둘 것

  • 비대칭은 의도가 아니라 제작 방식의 결과입니다. 미덕으로 본 것은 후대의 감상입니다
  • ‘달항아리’는 조선시대의 이름이 아닙니다. 근대 미술계에서 붙은 이름입니다
  • 소성 온도와 태토 배합에 정해진 수치는 없습니다. 가마마다 다릅니다

참고 자료

관련 영상

쇼츠 「허리의 이음선은 흠이 아니라 만든 방법입니다」 — 영상 업로드 후 링크 연결 예정

유튜브 채널 「옛것의 과학」에서 다른 편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은요

저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이 “일부러 어긋나게 만든 게 아니다”와 “그 어긋남을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사이의 간격이라고 봅니다. 두 사발을 가죽굳기까지 말려 맞붙이는 접동 방식에서 허리의 선과 비대칭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지만, 그것을 갈아내 억지로 감추지 않은 선택은 분명 도공의 몫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무기교의 미”라는 말로 뭉뚱그리기 쉬운데, 그렇게 하면 재료의 한계와 씨름한 기술의 이야기가 감상의 언어에 묻혀 버립니다. 백자대호가 김환기와 최순우를 거쳐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얻은 과정까지 알고 나면, 이 항아리는 조선의 손과 근대의 눈이 함께 완성한 물건이라는 쪽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에 박물관에서 실물을 보신다면 매끈한 전체 윤곽보다 허리께의 그 가느다란 선을 먼저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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