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무덤의 유리잔은 신라에서 만든 게 아닙니다 — 성분이 산지를 말한다

황남대총 남분 유리병 및 잔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1500년 전 신라 무덤에서 유리잔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신라 땅에는 유리를 녹이는 가마가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신라가 유리를 전혀 다루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잔에 쓰인 종류의 유리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된 사실입니다. 그 차이를 성분이 말해 줍니다.

모래만으로는 유리가 되지 않는다

유리의 주재료는 규사, 즉 이산화규소입니다. 그런데 순수한 규사는 1700도 넘게 올려야 녹습니다. 고대의 가마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온도입니다.

그래서 융제(flux) 를 섞습니다. 녹는점을 끌어내리는 물질입니다. 융제를 넣으면 1000도 안팎에서도 규사가 녹기 시작합니다.

여기가 핵심입니다. 무엇을 융제로 쓸 수 있는가는 그 지역에 무엇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역 주로 쓴 융제 유리의 성격
지중해 연안 소다(나트론, 식물재) 소다석회유리
중국 납·바륨 연바륨유리

이집트 사막의 나트론 광상, 해안 식물의 재 — 지중해권에는 소다를 얻을 경로가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다른 재료를 썼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유리의 화학 조성이 지역마다 다릅니다.

결과적으로 유리는 자기가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를 성분에 적어 놓고 있는 셈입니다.

성분으로 산지를 가르는 방법

이것을 다루는 분야가 고고화학입니다. 판별은 단계적으로 이뤄집니다.

주성분 — 소다 계열인가 납·바륨 계열인가를 먼저 봅니다. 이 단계에서 큰 계통이 갈립니다.

미량원소 — 같은 소다유리라도 원료 모래에 섞여 들어간 미량 성분의 조합이 산지마다 다릅니다. 어느 강가의 모래인지, 어느 지역의 나트론인지에 따라 지문처럼 달라집니다.

동위원소비 — 납이나 스트론튬 같은 원소의 동위원소 비율은 지질학적 기원에 따라 정해집니다. 사람이 바꿀 수 없는 값이라 가장 강한 근거로 쓰입니다.

경주 고분 출토 유리기를 분석한 결과는 소다석회유리였고, 제작 기법과 함께 판단해 지중해 연안에서 만들어진 이른바 ‘로만글라스’ 로 판정됐습니다. 최근에는 천마총 유리잔에 대해 동지중해 또는 흑해 연안 제작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색도 단서입니다. 코발트를 넣어 담록색과 감색을 냈습니다. 착색제의 종류와 양도 지역별 관행이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에서 직접 왔다”는 아닙니다

여기서 조심할 지점이 있습니다.

제작지가 지중해 연안이라는 것과, 그것이 어떤 경로로 경주까지 왔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물건은 만든 곳에서 쓰인 곳까지 여러 손을 거칩니다. 중간 상인, 중계 교역지, 외교 선물 — 경로는 얼마든지 복잡할 수 있습니다.

경로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갈래의 논의가 있습니다.

  • 초원길설 —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가로지르는 육상 경로입니다. 신라 고분에서 나오는 다른 북방계 유물들과 함께 설명되곤 합니다
  • 해상 실크로드설 —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거치는 바닷길입니다

가야가 먼저였다

여기서 이야기가 한 번 더 뒤집힙니다.

경주만이 아닙니다. 김해의 가야 무덤에서도 같은 계열의 유리가 나왔고, 그쪽이 시기적으로 더 이릅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유리가 북쪽 초원을 거쳐 신라로 들어온 뒤 남쪽으로 퍼진 것이 아니라, 남쪽 바닷길로 가야에 먼저 들어왔을 가능성을 열어 놓기 때문입니다. 김해는 낙동강 하구의 국제 교역항이었고, 왜·중국 남조와의 교류 흔적이 뚜렷한 곳입니다.

경로 논쟁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유물의 산지는 화학으로 좁힐 수 있지만, 경로는 유물 분포와 연대의 문제라 더 많은 자료가 쌓여야 합니다.

왜 무덤에 넣었나

당시 유리는 금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만들 줄 아는 곳이 한정돼 있었고, 깨지기 쉬운 물건이 수천 킬로미터를 건너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리기는 위세품입니다. 실용 그릇이 아니라 지위를 보여 주는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왕과 최고 지배층의 무덤에서만 나오는 분포가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무덤에 넣은 것은 저승에서도 쓰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장례라는 공개된 자리에서 “이 사람은 이런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를 보여 주는 절차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어디 있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있습니다. 황남대총·천마총·금령총 등에서 나온 유리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일부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확인해 둘 것

  • “로마에서 직접 수입했다”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제작지가 지중해 연안이라는 것까지가 확인된 사실이고 경로는 논쟁 중입니다
  • “신라에는 유리가 없었다”도 틀립니다. 소다유리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된 내용입니다
  • 개별 유물마다 산지 추정이 갈립니다 — 동지중해·흑해·서아시아 등

참고 자료

관련 영상

쇼츠 「신라 무덤의 유리잔은 신라에서 만든 게 아닙니다」 — 영상 업로드 후 링크 연결 예정

유튜브 채널 「옛것의 과학」에서 다른 편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은요

저는 이 글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이 로만글라스라는 이름보다 김해 가야 무덤의 유리가 경주보다 시기적으로 앞선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신라 무덤에서 로마 유리가 나왔다”는 화려한 한 줄에 눈이 가기 쉽지만, 정작 이야기를 뒤집는 쪽은 낙동강 하구의 교역항이 먼저 바닷길로 받아들였을 가능성 쪽입니다. 융제 때문에 소다석회유리와 연바륨유리의 조성이 갈리고, 그 성분이 산지를 지문처럼 남긴다는 원리도 저에게는 어떤 왕릉 유물보다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만 제작지가 지중해 연안이라는 것과 그 잔이 경주까지 온 경로는 별개의 문제라는 글의 경고는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봅니다. 초원길이냐 해상 실크로드냐를 성급히 단정하는 콘텐츠를 만날 때마다, 화학이 좁혀 준 것은 출발점이지 여정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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