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조선이 세워지고 3년째 되던 1395년, 나라는 커다란 검은 돌판에 별 1,400여 개를 새겼습니다. 별의 밝기에 따라 새긴 점의 크기까지 달리한 정밀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현대 천문학자들이 이 별들의 위치를 계산해 보니, 1395년의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지구의 축은 흔들린다
돌아가는 팽이를 보면 축이 똑바로 서 있지 않고 천천히 원을 그립니다. 지구도 같습니다. 자전축이 약 2만 6천 년을 주기로 큰 원을 그리며 회전합니다. 이것을 세차운동이라고 합니다.
축이 향하는 방향이 바뀌면 지상에서 보는 별의 위치도 조금씩 어긋납니다. 지금 북극성 자리에 있는 별이 수천 년 전에는 그 자리가 아니었고, 수천 년 뒤에도 아닐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성질이 나옵니다. 별들의 배치는 그 하늘을 관측한 시대의 지문 역할을 합니다. 어떤 천문도를 보고 별들의 상대 위치를 정밀하게 재면, 그 관측이 언제 이뤄졌는지 역산할 수 있습니다.
두 시대가 겹쳐 있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그렇게 읽어 보니 결과가 하나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일부 별자리는 14세기의 하늘이고, 다른 일부는 천 년도 더 전의 하늘이었습니다. 한 장의 돌판에 시차가 큰 두 관측이 함께 새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문헌 기록과 맞물립니다. 돌판 아래쪽에 새겨진 권근의 발문은 제작 경위를 이렇게 전합니다. 고구려에 전해지던 천문도가 있었는데 전란에 잃어버렸고, 그 인본(탁본)을 가진 사람이 태조에게 바쳤습니다. 서운관이 검토해 보니 세월이 흘러 별 위치에 오차가 생겨 있었고, 그래서 새로운 관측으로 어긋난 부분을 고쳐 새로 새겼다는 것입니다.
옛 하늘과 새 하늘이 한 판에 남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전부 다시 관측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만 교정했기 때문입니다.
옛 하늘은 정확히 언제인가
여기서부터는 확정된 답이 없습니다. 옛 별자리 부분의 관측 연대에 대해 학설이 갈립니다.
| 주장 | 연대 |
|---|---|
| 이른 시기 | 기원전 50년 ~ 기원후 1세기 |
| 중간 | 기원후 200년 무렵 |
| 늦은 시기 | 기원후 4~6세기 |
편차가 수백 년입니다. 그래서 영상에서도 “고구려의 하늘”이라고 못 박지 않고 “천 년도 더 전의 하늘”이라고만 말했습니다. 고구려 유래는 권근의 발문이 전하는 전승의 경로이지, 별 위치 계산이 곧바로 고구려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둘은 구분해서 다뤄야 합니다.
‘최초’라는 수식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소개할 때 “세계 최초”라는 표현이 종종 붙습니다. 정확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현존하는 석각 전천 천문도로는 중국의 순우천문도(1247년)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 다만 이 돌판이 담고 있는 관측 자료 자체의 연대를 기준으로 하면 훨씬 앞선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두 번째 주장은 앞서 본 관측 연대 논쟁 위에 서 있어서,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 글에서는 “현존 석각으로 두 번째, 담긴 관측은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까지만 말해 두겠습니다.
태조는 왜 서둘렀나
건국 직후 국가가 천문도부터 새긴 데는 정치적 의미가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하늘을 읽고 역법을 반포하는 일은 천명을 받은 자의 권한이었습니다. 새 왕조가 하늘의 질서를 장악했음을 돌에 새겨 보이는 것은 정당성의 선언이었습니다.
옛 천문도의 인본을 바친 사람에게 태조가 크게 기뻐했다는 기록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잃어버린 하늘의 지도를 되찾아 새로 새기는 일은, 끊어진 정통을 잇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볼 수 있는 것
원본 각석은 국보로 지정돼 국립고궁박물관에 있습니다. 숙종 대에 원본이 마모되자 복각본을 다시 만들었고, 그것도 함께 전합니다. 1만원권 지폐 뒷면 배경에 이 천문도가 들어가 있어서, 우리는 매일 이 하늘을 들고 다니는 셈입니다.
마치며
천상열차분야지도가 특별한 이유는 별을 많이 새겨서가 아닙니다. 한 장의 지도가 서로 다른 두 시대의 관측을 품고 있고, 현대 과학이 그것을 읽어냈다는 데 있습니다. 별의 위치가 시간의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 덕분에, 600년 전 돌판이 그보다 천 년 전의 하늘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참고 자료
- 우리역사넷, 「천상열차분야지도 1395」
- 경향신문 이기환, 「1~14세기 고구려·조선의 합작 천문도였다」(2023-01)
- 이용복, 「우리나라 별자리로서의 천상열차분야지도」
- 위키백과, 「천상열차분야지도」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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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옛것의 과학」에서 다른 편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은요
저는 이 돌판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이 “필요한 곳만 교정했다”는 서운관의 선택이라고 봅니다. 1395년에 전부 새로 관측해 새겼다면 더 깔끔한 천문도가 됐겠지만, 그랬다면 천 년 전 하늘의 흔적은 지워졌을 테고 현대 천문학자들이 두 시대를 읽어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반면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에 매달리는 쪽은 오히려 과대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순우천문도에 이어 두 번째라는 사실을 인정해도, 관측 연대가 기원전 50년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갈리는 논쟁 자체가 이 유물의 가치를 더 잘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순위 다툼보다, 매일 들고 다니는 1만원권 뒷면에 그 겹쳐진 하늘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 쪽이 훨씬 오래 남는 이야기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