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궁의 과학 — 가장 짧은 활이 가장 깊이 박힌 이유

각궁 — 시위를 벗겨 반대로 말린 부린활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활은 길수록 강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영국 장궁은 2미터에 가깝고 일본 화궁은 2미터를 넘습니다. 그런데 황학정에서 네 자루의 활을 같은 거리에서 쏴 관통 깊이를 재 보니 결과가 정반대였습니다.

길이 관통 깊이
일본 죽궁 220cm 튕겨 나감
영국 장궁 192cm 3cm
몽골 각궁 160cm 2.5cm
한국 국궁 131cm 3.3cm

10미터 거리에서 압축스티로폼을 대상으로 한 측정입니다. 가장 짧은 활이 가장 깊이 박혔습니다.

활을 당기면 안쪽과 바깥쪽에 정반대의 힘이 걸린다

이유는 활채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있습니다. 활을 당기면 활채가 휘면서 궁수 쪽 면은 눌리고(압축), 과녁 쪽 면은 늘어납니다(인장). 한 개의 활채에 성질이 정반대인 두 종류의 힘이 동시에 걸리는 겁니다.

나무 한 가지로만 만든 활은 이 둘을 같은 재료가 다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버티려면 길고 두꺼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 장궁이 2미터에 가까운 건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일 재료로 그 힘을 받아내려면 그 크기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각궁은 이 문제를 분업으로 풉니다.

  • 눌리는 안쪽(배)에는 물소뿔 — 압축에 강합니다
  • 늘어나는 바깥쪽(등)에는 소 힘줄 — 인장에 강합니다
  • 그 사이를 대나무와 산뽕나무 코어가 잇습니다

방향이 뒤바뀌면 물리적으로 틀립니다. 뿔이 궁수 쪽, 힘줄이 과녁 쪽입니다.

각궁 활채 — 검은 물소뿔과 흰 소 힘줄이 앞뒤로 붙은 구조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일곱 가지 재료 — 흔히 여섯이라고 하지만

각궁의 재료는 일곱 가지입니다. 여섯으로 소개하는 글이 많은데 화피가 빠진 것입니다(국가유산진흥원 기준).

재료 위치 역할
물소뿔 배(궁수 쪽) 압축 저항
소 힘줄 등(과녁 쪽) 인장 저항
대나무 중심 코어
산뽕나무 중심·양 끝 코어·고자
참나무 양 끝 고자
민어부레풀 전체 접착
화피(벚나무 껍질) 표면 마감·방습

흔히 “뽕나무”라고 적히지만 정확히는 산뽕나무입니다.

시위를 벗기면 반대로 뒤집힌다

각궁의 또 하나의 특징은 역만곡입니다. 시위를 벗긴 상태(부린활)에서는 활이 반대 방향으로 뒤집혀 거의 원형에 가깝게 말립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시위를 거는 순간부터 활채가 이미 크게 변형된 상태로 출발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기는 구간 내내 힘이 높게 유지됩니다. 활에 저장되는 에너지는 힘–당김 곡선 아래의 면적인데, 처음부터 힘이 높으니 짧은 당김에서도 그 면적이 커집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습니다. 활채가 가벼울수록 발사할 때 활 자신을 움직이는 데 낭비되는 에너지가 줄어듭니다. 세 재료를 성질에 맞게 배치하면 단위 질량당 저장 에너지가 목궁보다 커진다는 것이 활 역학 문헌(Kooi, 암스테르담 자유대)의 설명입니다. 짧고 가벼운데 센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물소뿔은 전부 수입품이었다 — 조선의 골칫거리

각궁의 핵심 재료인 물소뿔은 한반도에서 나지 않습니다. 전량 수입품이었습니다. 명, 류큐, 일본(대마번)을 거쳐 들어왔고 각궁 한 자루에 뿔 두 개가 듭니다.

문제는 명이 이 물자의 수출을 통제했다는 것입니다. 성종 11년, 한명회는 이렇게 호소합니다.

궁각 50부로는 넉넉하지 못하여 매우 민망스럽습니다.

국방 물자의 수급이 외교에 걸려 있었던 셈입니다. 세조는 아예 물소를 들여와 창경궁에서 길렀고 성종 10년에는 70여 마리까지 갔지만 정착에는 실패했습니다. 결국 순조 32년(1832)부터는 뿔 대신 구리를 수입해 쓰기 시작합니다.

여름에는 만들 수 없는 활

각궁을 붙이는 접착제는 민어의 부레로 만든 풀입니다. 덥고 습하면 이 풀이 제대로 굳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궁은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만 만들 수 있습니다.

한 자루를 완성하는 데 손길이 3,000번 이상 가고, 활풀이(길들이기)까지 하면 약 1년이 걸립니다. 그리고 이 습기 문제는 완성된 뒤에도 따라옵니다. 장마철에는 부레풀이 물러 활의 힘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쓰고 나면 시위를 벗겨 부린활 상태로 보관합니다. 가장 정교한 무기가 날씨에는 지는 셈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활”은 과장입니다

각궁을 소개하는 글에 거의 빠지지 않는 표현이지만, 이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 오스만 제국의 비사(飛射) 기록은 셀림 3세, 1798년, 889m입니다. 각궁의 어떤 기록도 여기 미치지 못합니다.
  • 사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기관 자료 기준은 150~300m입니다. “500m를 날아간다”는 서술은 영어권 관광 블로그에서 나온 것입니다.
  • “일본 활은 수십 미터밖에 못 나간다”는 말도 사실과 다릅니다. 산주산겐도 통시(通矢)에서 120m 회랑을 관통시킨 기록이 다수 있습니다.

활은 그 지역의 재료와 전술에 맞춰 최적화된 물건입니다. 우열을 가리는 비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각궁에 대해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같은 길이 대비 압도적” 이라는 것입니다. 당대 명나라 사신의 평가도 그 결이었습니다.

조선의 화피궁은 중국 제도에 비해 약간 짧으나 화살이 날아가는 힘은 심히 강하다.

널리 퍼졌지만 근거를 찾지 못한 수치들

이 편을 준비하면서 확인하려다 근거를 찾지 못한 것들도 함께 적어 둡니다.

  • “효율 80% vs 장궁 30~40%” — 장인의 발언 인용이지 측정치가 아닙니다. 활 역학 문헌의 효율 계수는 활 종류를 막론하고 대체로 0.7~0.8입니다.
  • “뿔이 나무보다 압축강도 3.5배”, “힘줄 인장한계 8% / 뿔 4% / 나무 1%” — 학술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수치 없이 “훨씬 강하다”까지만 말하는 게 맞습니다.
  • 편전 “1,000보” — 약 1.2km인데 현대 비사 세계기록 889m를 넘습니다. 조선 문헌의 표현이라는 틀 안에서만 소개해야 합니다.
  • “삼국시대부터 지금 형태였다” — 평양 출토 초기 유물은 물소뿔이 아니라 소뼈를 썼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물소뿔 각궁은 수입 무역이 성립한 뒤의 형태입니다.

무과의 거리, 그리고 145미터

조선 무과의 규정 거리는 화살 종류마다 달랐습니다. 목전 240보, 편전 130보, 철전 80보입니다. 편전 규정 거리는 자료마다 130보와 180보로 갈리는데, 『경국대전』과 『속대전』의 개정 때문입니다.

지금 국궁장의 과녁 거리 145미터는 조선의 규정을 그대로 물려받은 값이 아닙니다. 1963년 대한궁도협회가 유엽전 120보를 미터법으로 환산해 정한 것입니다.

궁시장 공방 — 각궁 제작 도구와 활채

사진: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두 개의 무형유산

마지막으로 지정 관계를 정리해 둡니다. 혼동하기 쉬운 부분입니다.

  • 궁시장(弓矢匠) — 1971년 9월 13일 국가무형유산 지정. 활 만드는 이가 궁장, 화살 만드는 이가 시장입니다.
  • 활쏘기 — 2020년 7월 30일 별도로 국가무형유산이 됐습니다.
  • 유물로서의 각궁도 1976년 12월 31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만드는 기술과 쏘는 행위가 각각 따로 지정된 셈입니다. 49년의 시차가 있습니다.

참고 자료

관련 영상

유튜브 채널 「옛것의 과학」에서 다른 편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은요

저는 이 글을 정리하면서 생각이 가장 크게 바뀐 대목이 131센티미터짜리 활이 220센티미터 죽궁을 이긴 관통 실험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역시 우리 활이 최고”라는 결론으로 읽힐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셀림 3세의 889미터 기록이나 산주산겐도 통시처럼 각궁이 이기지 못하는 지점을 같이 적어 두는 쪽이 저 실험의 무게를 더 살린다고 판단했습니다.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건 오히려 물소뿔이 전량 수입품이었다는 부분인데, 저는 각궁의 진짜 이야기가 재료의 우수성보다 명나라 눈치를 보며 궁각 50부에 애태우던 그 수급 문제 쪽에 있다고 봅니다. 세계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덜어내도, 여름에는 만들지도 못하는 활을 일곱 가지 재료로 붙여 낸 그 집요함만으로 각궁은 충분히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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