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 대부분의 들꽃이 진 뒤, 햇볕 드는 산비탈 풀밭에 자주색 별 모양 꽃이 층층이 피어 있다면 자주쓴풀입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꽃들 가운데 가장 늦게 피는 꽃이기도 합니다.

이미지: AI로 생성한 개화 타임랩스 프레임 (잊혀진 정원)
천 번을 우려도 쓰다
이름은 자주색이 나는 쓴 풀이라는 뜻입니다. 쓴맛이 워낙 강해서 별명이 여럿 붙었습니다.
- 천진 — 천 번을 우려내도 여전히 쓰다는 뜻
- 어담초(魚膽草) — 생선의 쓸개처럼 쓰다는 뜻
국립수목원 도감에도 “뿌리는 쓴맛이 강하다”고 적혀 있습니다. 뿌리부터 줄기, 잎, 꽃까지 온몸이 씁니다.
쓴맛이 약이 되었던 풀
옛사람들은 자주쓴풀과 쓴풀 무리의 전초(뿌리까지 포함한 풀 전체)를 당약(當藥)이라 부르며 약으로 썼습니다. 입맛이 없거나 소화가 안 될 때 쓴 약재였습니다. 도감의 재배 기록에도 꽃이 필 때 포기 전체를 거두어 말린다고 되어 있습니다.
약으로 드시려면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하세요. 이 글은 옛 쓰임을 소개할 뿐 복용을 권하지 않습니다.
자주쓴풀은 어떤 식물인가
| 항목 | 내용 |
|---|---|
| 학명 | Swertia pseudochinensis |
| 생활형 | 두해살이풀 (용담과) |
| 키 | 15~30cm, 줄기는 자흑색이고 약간 네모짐 |
| 개화 | 9~10월 |
| 꽃 | 자주색, 5갈래로 깊게 갈라진 별 모양, 꽃잎 1~1.5cm |
| 특징 | 꽃잎마다 짙은 맥(줄무늬), 밑부분에 털로 덮인 꿀샘 2개 |
| 꽃차례 | 원뿔 모양, 위에서부터 아래로 피어 내려옴 |
| 잎 | 마주나기, 피침형, 2~4cm |
| 자생지 | 전국 산야의 양지 |
꽃잎 밑의 털 달린 꿀샘이 이 꽃의 숨은 특징입니다. 꽃잎 한 장마다 밑부분에 털로 덮인 작은 선체가 두 개씩 있어, 가까이 보면 꽃 가운데가 보송보송합니다.

이미지: AI로 생성한 개화 타임랩스 프레임 (잊혀진 정원) — 3단계

사진: “Swertia pseudochinensis” by zhangshen is licensed under CC BY 4.0. To view a copy of this license, visit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
비슷한 꽃과 구별하기
- 쓴풀 — 같은 무리지만 꽃이 흰색입니다.
- 도라지꽃 — 별 모양 보라 꽃이라 멀리서 헷갈릴 수 있지만, 도라지는 꽃잎이 밑에서 붙은 종 모양이고 꽃이 훨씬 큽니다. 자주쓴풀은 꽃잎이 거의 밑까지 깊게 갈라져 따로따로 떨어진 별처럼 보입니다.
기르기 — 두해살이의 리듬
자주쓴풀은 두해살이입니다. 첫해에는 땅에 붙은 잎만 키우고, 이듬해 가을에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운 뒤 씨를 맺고 생을 마칩니다.
- 볕 — 양지. 산야의 볕 드는 풀밭이 자생지입니다.
- 물 — 배수가 잘 되게. 물이 고이면 뿌리가 상합니다.
- 흙 — 물이 잘 빠지는 모래 섞인 흙(사질양토)에서 잘 자랍니다.
- 번식 — 씨앗으로 늘립니다. 줄지어 뿌린 뒤 싹이 트면 촘촘한 곳을 솎아 포기 사이를 넓혀 줍니다.
두해살이라 해마다 꽃을 보려면 씨를 받아 해마다 뿌려 두는 것이 방법입니다. 그러면 첫해 포기와 둘째 해 포기가 번갈아 자라 매년 가을 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땐 이렇게
첫해에 꽃이 안 핍니다 — 정상입니다. 두해살이라 이듬해 가을에 핍니다.
꽃이 핀 뒤 포기가 죽습니다 — 이것도 정상입니다. 씨를 받아 두셨다면 다음 세대가 이어집니다.
꽃말
자주쓴풀의 꽃말은 덧없는 사랑, 그리고 지각입니다. 한 번 꽃을 피우고 생을 마치는 두해살이의 삶과 겹쳐 읽히는 꽃말입니다.
마무리
자주쓴풀은 가장 쓴 풀이 가장 늦게 피워 올리는 가장 고운 별입니다. 쓴맛은 오래전부터 약이 되었고, 꽃은 가을의 끝을 장식합니다.
가을 산비탈에서 이 별을 만나시면 꽃잎의 짙은 줄무늬를 한번 들여다보세요. 쓴 풀이라는 이름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곱습니다.
쇼츠 「가장 쓴 풀이 피운 가장 고운 별」 바로 보기 이 글의 이미지 중 일부는 실제 사진이 아니라 국립수목원 도감의 형태 기술을 바탕으로 생성한 것입니다. 종의 특징이 어긋나지 않도록 개화기·꽃 색·잎 모양을 도감과 대조해 만들었습니다.
참고 자료
-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 식물도감 자주쓴풀(도감번호 31903)
제 생각은요
저는 이 글에서 사람들이 가장 놓치기 쉬운 대목이 두해살이라는 사실이라고 봅니다. 씨를 뿌리고 첫해에 꽃이 안 피면 실패했다고 접기 쉬운데, 땅에 붙은 잎만 키우는 그 한 해가 이듬해 가을 개화의 준비 기간이라는 걸 알면 기다림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반대로 천진이니 어담초니 하는 쓴맛 이야기는 재미있는 별명 이상으로 무게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약으로 쓰였다는 기록만 믿고 함부로 달여 마시는 것보다는, 꽃잎의 짙은 줄무늬와 털로 덮인 꿀샘을 들여다보는 쪽이 이 꽃을 제대로 누리는 길이라고 봅니다. 가장 늦게 피는 꽃이니, 올가을 산행이 끝물이라 아쉬운 분들에게 오히려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