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산기슭을 지나다 흰 꽃이 무더기로 달린 가시덤불을 보셨을 겁니다. 향이 유독 진해서 꽃보다 냄새로 먼저 알아채는 그 나무입니다.

이미지: AI로 생성한 개화 타임랩스 프레임 (잊혀진 정원)
이미지: AI로 생성한 개화 타임랩스 프레임 (잊혀진 정원)
찔레는 원래 사람 이름이었다는 이야기
고려 때 몽골에 공녀로 끌려간 언니를 찾아 나섰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동생의 이름이 찔레였고, 그 자리에 흰 꽃이 피어 찔레꽃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다만 이 설화는 민간에 전해 내려온 것이라 판본이 여럿입니다. 언니를 찾아 헤맸다는 줄기는 같은데, 동생이 죽은 곳도 결말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집니다. 문헌에 확정된 원전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은 알고 읽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이름 자체는 ‘찌르는 가시가 있는 나무’에서 왔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설화가 이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름에 이야기가 붙었다고 보는 쪽입니다.
찔레꽃은 어떤 나무인가
장미과의 낙엽 관목입니다. 우리가 화단에서 보는 장미의 야생 친척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항목 | 내용 |
|---|---|
| 학명 | Rosa multiflora |
| 키 | 0.5~2m, 줄기가 활처럼 휘어 늘어짐 |
| 개화 | 5~6월 |
| 꽃 | 흰색(드물게 연분홍), 지름 1.5~4cm, 꽃잎 다섯 장 |
| 꽃차례 | 가지 끝에 3~14송이가 원추상으로 모여 핌 |
| 잎 | 작은잎 5~9장의 홀수깃꼴겹잎 |
| 열매 | 가을에 붉게 익음 |
| 자생지 | 함경북도를 제외한 전역, 산기슭·개울가·길가 |
잎을 보면 장미과인 것이 분명합니다. 잎 한 장처럼 보이는 것이 실은 작은잎 5~9장이 한 자루에 붙은 겹잎입니다. 이 점 때문에 다른 흰 꽃 관목과 헷갈릴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미지: AI로 생성한 개화 타임랩스 프레임 (잊혀진 정원) — 3단계
이미지: AI로 생성한 개화 타임랩스 프레임 (잊혀진 정원) — 3단계

찔레꽃 실물 — 흰 꽃잎 다섯 장과 노란 수술, 홀수깃꼴겹잎 (위키미디어 공용)
원예 장미의 뿌리가 되는 나무
찔레꽃이 정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자리는 사실 꽃이 아니라 뿌리입니다.
원예 장미는 대개 접붙이기로 번식시킵니다. 이때 아래쪽에서 뿌리를 담당하는 부분을 대목(臺木)이라 하는데, 찔레꽃이 그 대목으로 널리 쓰입니다. 병에 강하고 아무 땅에서나 잘 살며 뿌리가 튼튼하기 때문입니다.
정원의 장미가 어느 해부터 꽃이 작은 흰 꽃으로 바뀌었다면, 접붙인 윗부분이 죽고 대목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 흰 꽃이 바로 찔레꽃입니다.
심기 — 자리와 흙
까다롭지 않습니다. 자생지가 산기슭·개울가·길가인 데서 알 수 있듯 가리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 볕 — 양지가 원칙이지만 반그늘에서도 자랍니다. 다만 그늘이 깊으면 꽃이 줄어듭니다.
- 물 — 겉흙이 마르면 줍니다. 개울가에 자생하지만 물에 잠기는 자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 자리 — 줄기가 활처럼 휘며 옆으로 벌기 때문에 폭을 넉넉히 잡아야 합니다. 좁은 화단에 심으면 몇 해 지나 통로를 막습니다.
번식 — 가지꽂이가 가장 쉽다
찔레꽃은 가지를 꽂으면 뿌리를 내립니다. 장미과 중에서도 발근이 잘 되는 편이라 초보자도 성공률이 높습니다.
| 방법 | 시기 |
|---|---|
| 가지꽂이(삽목) | 2~3월 / 6월 / 9~10월 |
| 포기나누기 | 봄 |
- 봄(2~3월)과 가을(9~10월)에는 지난해 자란 굳은 가지를, 6월에는 그해 자란 푸른 가지를 씁니다.
- 15~20cm로 잘라 아래쪽 잎을 떼고 흙에 절반쯤 묻습니다. 마르지 않게 그늘에서 관리하면 한 달 안팎에 뿌리가 납니다.
찔레순과 열매
봄에 새로 돋는 연한 순을 찔레순이라 하여 예전 아이들이 꺾어 먹었습니다. 껍질을 벗기면 속이 무르고 약간 단맛이 납니다.
가을에 붉게 익는 열매는 영실(營實)이라 하여 한방에서 써 왔습니다.
주의: 산과 들에서 채취해 드시려면 종을 정확히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잎이 5~9장 겹잎인지, 가시가 바늘 모양인지 확인하세요. 도로변이나 농경지 가장자리는 제초제·매연에 노출되므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지치기 — 안 하면 덤불이 됩니다
찔레꽃은 그냥 두면 사방으로 뻗어 덤불을 이룹니다. 자생지에서는 그것이 장점이지만 정원에서는 관리가 필요합니다.
- 꽃이 진 직후(6~7월)에 다듬습니다. 이듬해 꽃눈이 여름부터 만들어지므로 늦가을이나 겨울에 세게 자르면 다음 해 꽃을 버립니다.
- 오래되어 굵고 검어진 줄기는 밑동에서 잘라 냅니다. 새 가지에서 꽃이 잘 핍니다.
- 가시가 억세므로 두꺼운 장갑이 필요합니다.
이럴 땐 이렇게
꽃이 적게 핍니다 — 그늘이거나, 지난겨울에 가지를 너무 잘랐거나, 질소 거름이 많아 잎만 무성해진 경우입니다.
잎에 흰 가루가 낍니다 — 흰가루병입니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자리에서 잘 생기므로 가운데 가지를 솎아 통풍을 틔워 줍니다.
심지도 않은 자리에서 자꾸 올라옵니다 — 새가 열매를 먹고 씨를 퍼뜨립니다. 어릴 때 뽑는 편이 낫습니다. 뿌리가 깊어지면 힘듭니다.
꽃말
찔레꽃의 꽃말은 고독, 그리고 신중한 사랑입니다. 가시를 두르고 있으면서도 향은 감추지 못하는 꽃이라 붙은 이름으로 읽힙니다.
마무리
찔레꽃은 누가 심어서 거기 있는 나무가 아닙니다. 산기슭이든 개울가든 길가든, 사람이 손대지 않은 자리에 알아서 자리를 잡습니다.
정원에 들이신다면 폭을 넉넉히 주고 꽃 진 뒤에 다듬는 것 두 가지만 지키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알아서 자랍니다.
이 글의 이미지 중 일부는 실제 사진이 아니라 국립수목원 도감의 형태 기술을 바탕으로 생성한 것입니다. 종의 특징이 어긋나지 않도록 개화기·꽃 색·잎 모양을 도감과 대조해 만들었습니다.
참고 자료
-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 식물도감 찔레꽃(도감번호 32222)
제 생각은요
저는 이 글에서 사람들이 가장 흘려 읽기 쉬운 대목이 가지치기 시기라고 봅니다. 심는 것도 번식도 워낙 쉬운 나무라 관리까지 만만하게 보기 쉬운데, 꽃눈이 여름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에 늦가을이나 겨울에 세게 자르면 다음 해 꽃을 통째로 버린다는 부분은 찔레꽃을 정원에 들일지 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찔레라는 소녀의 설화는 조금 과대평가된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판본이 여럿이고 확정된 원전도 없다는 점을 원고가 솔직하게 밝힌 것처럼, 저는 이름이 ‘찌르는 나무’에서 왔고 거기에 이야기가 붙었다고 보는 쪽이 더 설득력 있게 읽힙니다. 정원의 장미가 어느 해부터 작은 흰 꽃을 피우면 대목인 찔레가 살아난 것이라는 대목이야말로, 설화보다 이 나무의 생명력을 잘 보여 주는 진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