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마당가나 화단 가장자리에 손톱만 한 꽃이 촘촘히 깔린 것을 보셨을 겁니다. 어릴 적 집 앞에 하나쯤 있던 그 꽃이 채송화인데, 실은 꽃 키우기 통틀어 가장 손이 덜 가는 축에 드는 식물입니다. 잘 키우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망치기 쉬운 쪽입니다.

이미지: AI로 생성한 개화 타임랩스 프레임 (잊혀진 정원)
흐린 날에는 아예 피지 않습니다
영어 이름이 Eleven-o’clock, 열한시 꽃입니다. 채송화 꽃은 한낮 직사광선을 받아야만 열리고, 밤이나 흐린 날에는 봉오리째 오므린 채 하루를 넘깁니다.
키운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가 여기서 나옵니다. “꽃이 안 핀다”고 하는 경우의 상당수는 꽃이 없는 게 아니라 볕이 모자라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전에만 볕이 드는 베란다나 반그늘 화단에 두면 봉오리는 맺히는데 활짝 벌어지는 모습을 좀처럼 못 봅니다.
그러니 자리 선정이 곧 성패입니다. 이 꽃에 관해서는 가장 뜨겁고 가장 볕이 센 자리가 정답입니다.
언제, 어디에 심나
남아메리카 원산의 한해살이풀입니다. 서리에 바로 죽으므로 서리 걱정이 사라진 뒤에 시작합니다.
| 시기 | 할 일 |
|---|---|
| 4월 | 자리 정하기 — 하루 종일 볕 드는 곳, 흙에 굵은 모래·마사토 섞기 |
| 5월 중순~6월 초 | 씨 뿌리기(흙을 덮지 않음), 또는 모종 심기 |
| 6월 | 솎아내기(포기 사이 15cm), 웃자란 가지 잘라 꺾꽂이 |
| 7~10월 | 개화 — 물은 흙이 완전히 마른 뒤에만 |
| 9~10월 | 씨 받기(꼬투리가 마르면 바로) |
| 11월 | 서리와 함께 끝 — 이듬해엔 저절로 난 싹을 기다리거나 다시 파종 |
흙은 배수가 전부입니다. 사질양토를 좋아하고, 원예용 상토만 쓰면 물이 오래 고입니다. 굵은 모래나 마사토를 3분의 1쯤 섞어 주세요. 자갈밭 같은 자리, 담장 밑, 화단 가장자리처럼 다른 꽃이 잘 안 되는 척박한 곳이 오히려 잘 맞습니다.
공해에도 강해서 도시 화단이나 도로변에서도 잘 견딥니다.
씨를 뿌릴 때 흙을 덮지 마세요
채송화 파종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거의 하나입니다. 씨앗을 흙으로 덮어서입니다.
채송화 씨앗은 먼지처럼 작은 미세 종자이고, 게다가 호광성입니다. 빛을 받아야 싹이 트는 성질이라 흙에 묻히면 그대로 잠들어 버립니다.
- 흙 표면을 평평하게 고르고 미리 물을 충분히 적셔 둡니다.
- 씨를 뿌린 뒤 손바닥으로 살짝 눌러 흙에 붙이기만 합니다. 덮지 않습니다.
- 물은 위에서 쏟아붓지 말고 분무기로 줍니다. 물줄기에 씨가 쓸려 갑니다.
- 발아까지 표면이 마르지 않게 유지하되, 싹이 난 뒤에는 바로 건조 관리로 넘어갑니다.
- 씨가 너무 작아 고르게 뿌리기 어려우면 마른 모래에 섞어 뿌리면 훨씬 균일합니다.
싹이 촘촘히 나면 아깝더라도 솎아 줍니다. 포기 사이 15cm 정도면 가지가 옆으로 벌어져 땅을 덮습니다.

이미지: AI로 생성한 개화 타임랩스 프레임 (잊혀진 정원) — 3단계
물은 적게, 더 적게
가장 흔한 사인은 과습입니다.
잎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채송화 잎은 길이 1~2cm의 원통형 다육질입니다. 이 통통한 잎에 물을 저장하기 때문에 며칠 말라 있어도 끄떡없습니다. 반대로 흙이 젖어 있는 시간이 길면 뿌리부터 무릅니다.
- 흙이 완전히 마른 것을 확인한 뒤에만 줍니다. 손가락을 2~3cm 넣어 보고 축축하면 건너뜁니다.
- 한여름 노지에서는 비만으로도 충분한 날이 많습니다.
- 화분이라면 물구멍이 넉넉한 토분이 좋습니다. 받침에 고인 물은 반드시 버립니다.
- 장마철에는 화분을 처마 밑으로 옮겨 주면 훨씬 안전합니다.
거름도 거의 필요 없습니다. 척박한 흙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라, 질소가 많으면 잎만 무성해지고 꽃이 줄어듭니다.

사진: “Portulaca grandiflora mutant1” by JerryFriedman is licensed under CC BY-SA 3.0. To view a copy of this license, visit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채송화는 어떤 식물인가
쇠비름과 한해살이풀입니다.
| 항목 | 내용 |
|---|---|
| 개화 | 7~10월 — 여름 내내 이어서 핍니다 |
| 키 | 20cm 안팎, 옆으로 퍼짐 |
| 줄기 | 붉은빛을 띠고 가지가 많이 갈라짐 |
| 꽃 | 지름 3cm, 꽃잎 5장(끝이 얕게 패임), 수술 다수, 가지 끝에 1~2개씩 |
| 꽃 색 | 붉은색·흰색·노란색·자주색 |
| 잎 | 원통형 다육질, 길이 1~2cm, 어긋남 — 이것이 진단 형질 |
| 자생 | 남아메리카 원산, 사질양토면 어디서나 |
원통형 다육질 잎이 이 꽃을 가르는 핵심입니다. 꽃만 보면 다른 초화와 헷갈릴 수 있지만, 잎이 통통한 원기둥이면 채송화 쪽입니다.
꺾꽂이 — 잘라 꽂으면 삽니다
번식이 이만큼 쉬운 꽃도 드뭅니다. 다육질 줄기라 잘라서 꽂아 두면 뿌리가 납니다.
- 웃자란 가지를 5~7cm 길이로 자릅니다.
- 자른 자리를 그늘에서 반나절쯤 말립니다. 이 과정을 건너뛰면 무를 수 있습니다.
- 아래쪽 잎을 떼고 마른 모래 섞은 흙에 꽂습니다.
- 꽂은 직후에는 물을 주지 않습니다. 며칠 뒤부터 살짝만 적셔 줍니다.
여름철이면 1~2주면 뿌리가 자리를 잡습니다. 마음에 드는 색이 있으면 씨를 받는 것보다 꺾꽂이가 확실합니다 — 씨앗은 색이 섞여 나오지만 꺾꽂이는 어미와 같은 색이 나옵니다.
씨 받기, 그리고 저절로 나는 성질
꽃이 지면 작은 꼬투리가 생기고, 익으면 뚜껑처럼 윗부분이 열리며 씨가 쏟아집니다. 받으려면 꼬투리가 누렇게 마른 즉시 봉지에 털어 넣어야 합니다. 하루 늦으면 이미 다 떨어져 있습니다.
받지 못해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습니다. 그 자리에 떨어진 씨가 이듬해 봄에 저절로 나기 때문입니다. 한번 심어 둔 화단에서 해마다 알아서 올라오는 경우가 흔합니다. 다만 남부 지방과 볕 잘 드는 자리에서 더 잘 나옵니다.
이럴 땐 이렇게
봉오리는 있는데 꽃이 안 열립니다 — 볕 부족입니다. 흐린 날이 이어지거나 하루 볕이 짧은 자리입니다. 더 뜨거운 자리로 옮기세요.
줄기가 무르고 검게 변합니다 — 과습입니다. 물을 끊고, 화분이라면 배수가 되는 흙으로 갈아 심습니다. 성한 가지를 잘라 꺾꽂이로 살려 두세요.
잎만 무성하고 꽃이 적습니다 — 거름이 과하거나 물이 잦은 경우입니다. 이 꽃은 굶기고 말릴수록 꽃이 많아집니다.
씨를 뿌렸는데 안 납니다 — 흙을 덮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표면에 뿌리고 누르기만 하세요. 지온이 낮아도 늦어지니 5월 중순 이후에 시작합니다.
먹을 수 있나요 — 쇠비름과의 관계
채송화는 쇠비름과입니다. 나물로 먹는 그 쇠비름(Portulaca oleracea)과 같은 속(屬)이라, 검색을 하다 보면 “먹어도 된다”는 이야기가 섞여 나옵니다.
같은 속이라는 것과 식용이라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먹는 것은 쇠비름이지 관상용으로 개량된 채송화가 아닙니다. 화단의 채송화는 원예종이고 살충제·비료를 쓴 경우도 많습니다. 먹을 목적이라면 채송화가 아니라 쇠비름을 따로 구하시는 편이 맞습니다.
흩어진 보석이라는 이야기
꽃 색이 유난히 여럿인 데에는 전해 오는 이야기가 붙어 있습니다.
고대 페르시아에 보석밖에 모르는 여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노인이 보석 상자를 들고 와 보석 하나에 백성 한 명을 값으로 요구했고 여왕은 승낙했습니다. 보석을 받을 때마다 백성이 하나씩 사라졌고, 백성이 다 사라진 뒤에도 여왕이 마지막 보석에 손을 뻗는 순간 상자가 터지며 여왕마저 사라졌습니다. 흩어진 보석 조각들이 제 빛깔대로 피어난 꽃이 채송화라고 합니다.
붉은색·노란색·흰색·자주색으로 색이 갈리는 이유를 설명하는 이야기입니다. 문헌 설화라기보다 한국어권에서 널리 퍼져 통용되는 전승 쪽에 가깝습니다.
꽃말
채송화의 꽃말은 가련함, 순진, 그리고 천진난만입니다.
마무리
채송화는 정직한 꽃입니다. 볕이 좋으면 열고, 아니면 닫습니다. 잘해 주려고 물을 더 주고 거름을 더 주면 오히려 무릅니다.
심고 잊어버리는 것이 이 꽃을 가장 잘 키우는 방법입니다. 볕 좋은 자갈밭 한 뼘만 내어 주면 여름 내내 알아서 핍니다.
쇼츠 「흐린 날에는 아예 피지 않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보기 이 글의 이미지는 실제 사진이 아니라 국립수목원 도감의 형태 기술을 바탕으로 생성한 것입니다.
참고 자료
-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 식물도감 채송화(도감번호 30985)
제 생각은요
저는 이 글에서 사람들이 가장 놓치기 쉬운 대목이 물 주기보다 씨 뿌리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과습이 위험하다는 얘기는 다육질 잎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라도 가는데, 씨앗이 호광성이라 흙을 덮으면 아예 싹이 트지 않는다는 건 알려 주지 않으면 정성껏 덮어 주는 쪽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꽃말이나 페르시아 여왕 이야기는 재미로 읽을 거리일 뿐이고, 실제 성패는 하루 종일 볕 드는 자리 하나를 내어 줄 수 있느냐에서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전에만 볕이 드는 베란다밖에 없는 분께는 봉오리만 보다 끝날 가능성이 커서 선뜻 권하기 어렵고, 담장 밑 자갈밭처럼 다른 꽃이 다 실패한 자리를 가진 분께는 이만한 선택이 없다고 봅니다. 마음에 드는 색을 이어 가려면 씨받기보다 꺾꽂이가 확실하다는 대목도, 가볍게 지나치기 쉽지만 몇 해 키울 생각이라면 가장 값진 정보라고 생각합니다.